[삼성 나눔경영·구조개혁] '중앙집권 체제'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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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삼성'은 삼성의 경영방식을 통칭하는 트레이드 마크다.
구조조정본부(옛 비서실)를 통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와 국내 최고수준의 경영기법을 동시에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관리의 삼성'은 '자율의 삼성'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7일 삼성 발표문을 읽어나가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보도자료에 없는 한 문장을 읽었다.
"삼성에 대한 여러분들의 질책과 조언을 받아들여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싱글보이스 시스템'이 기업문화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구조본이 각 계열사들의 인사와 예산을 통제하고 있는 삼성의 기업문화 속에서 지금까지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은 한낱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떤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도 독립이나 자율이라는 표현을 섣불리 입에 올리지 못했다.
구조본의 통제를 벗어나겠다는 뜻으로 공연히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이른바 '재벌개혁 프로그램'으로 구조본을 없앨 것을 강력하게 종용했지만 삼성만은 구조본을 해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터였다.
◆구조본,관리에서 경영지원으로
하지만 이날 이학수 본부장은 스스로 자신이 이끌고 있는 구조본의 기능과 역할,조직까지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다 계열사들의 자율경영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까지 했다.
이미 지난달 초 정기인사를 통해 150명에 달하던 구조본 인력을 98명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나아가 향후 구조본의 역할로 △삼성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계열사들이 경영철학과 가치를 공유토록 하고 △선진 경영시스템과 기법을 개발 및 전파하고 △계열사들의 공통업무를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그동안 '본업'으로 여겨온 '관리'보다는 '경영지원'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계열사 사장들이 불필요한 눈치를 보지 않고 재량껏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구조본 출신 인사들이 재무담당 최고경영자(CFO)와 같은 주요 계열사 핵심 중역에 임명되는 경우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구조본에 대해 계열사 사장과 CFO로 이원화돼있는 보고체계도 어느 정도 정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소그룹 단위 협의체 대두될 듯
구조본의 통제력이 약화될 경우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업종별로 소그룹화(化) 될 가능성도 높다.
과거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이 그룹 비서실장을 맡았던 1995년에 한때 시도됐던 소그룹 분할체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즉 그룹 전반에 대한 구심점이 약화되는 데 따른 대안으로 전자 금융 건설 등 업종별 협의체제를 만들어 상호 시너지를 구현하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학수 본부장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 현 구조본 체제가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2004년 이후 '글로벌 삼성'의 최전성기를 이끌어온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갑작스런 역할 전환이 위험하다는 우려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아직 소그룹 내지는 계열사에 설득력있는 구심점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통제력을 조절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이건희 회장이 구조본과 계열사 사장단의 보고체계 가운데 어느 채널에 무게를 싣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경중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