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나눔경영.구조개혁] "금산법 개정되면 그대로 수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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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7일 발표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은 세간의 예상 수위를 뛰어넘는 파격적 내용이었다.
이날 발표문은 당초 사회공헌 활동 확대를 통한 나눔경영을 강조하는 수준 정도로 예상됐으나 이와 달리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출연과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한 헌법소원 취하,구조조정본부 법무실 분리 등의 메가톤급 내용을 담았다.
삼성 내부에선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가장 충격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이 같은 내용은 "정치자금과 자식들에 대한 증여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매우 죄송스럽다"는 이 회장의 사과문과 함께 발표되면서 더욱 무게가 실렸다.
◆삼성 '국민기업'으로 가나
이날 발표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맥락은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기업상 구현'이었다.
한마디로 '국민기업 삼성'의 앞날을 지켜봐달라는 당부로도 해석됐다.
삼성이 이 같은 키워드를 난국 돌파의 핵심으로 삼고 나선 이유는 경영자로의 능력과는 별도로 이 회장 일가에 대한 소유-지배구조에 비판이 집중돼온 점을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나 삼성은 이번에 오너 일가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이나 사회적 여망을 기준으로 경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기득권 포기하나
이날 이학수 본부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과 삼성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라며 "삼성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와 관련,현재 진행 중인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한 443억원의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취하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6월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11조를 상대로 제기해놓은 헌법소원도 취하키로 했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산업구조개선에 대한 법률(일명 금산법) 개정안도 여야 정당의 논의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모두 그동안 "삼성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목들이다.
결국 삼성은 그룹의 핵심인 전자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헌법소원까지 불사하며 격렬하게 맞섰던 태도를 180도 바꾸며 기득권 포기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공정거래법 11조나 금산법은 현행 삼성 지배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핵심 법안들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삼성의 양보는 거의 '결단'에 가깝다는 평가다.
◆법보다는 국민정서 따르겠다
삼성은 여러 현안들에 대한 법률적인 합리성과 타당성을 따지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부 국민여론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접해 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국민정서를 고려하고 국민들의 기대와 뜻에 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한 데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구조본에서 법무실을 따로 떼어내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 몇년간 정부의 각종 규제 입법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본에 역량 있는 변호사들을 잇따라 영입,법무실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대로'를 외쳐온 법률가들의 원칙이 국민정서 및 여론에 기댄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삼성이 막강한 법조인맥들을 활용해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비판까지 받게 되자 법무실을 분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