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 이슬람권은 유럽과 한판 경제전쟁을 치를 태세다. 덴마크의 한 신문에 실린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만화 몇 컷 때문이다. 반유럽 폭력이 날로 확산되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이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면서 만화를 게재한 나라에 대한 경제제재,계약취소,상품 불매운동 등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예 마호메트 그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동물이나 사람의 모양을 묘사하는 행위조차도 신성모독으로 간주됐다.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우상숭배금지 사상 때문이다. 이처럼 1400년 이슬람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예언자 형상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악마의 친구로,폭탄테러범으로 묘사된 해괴한 모습을 접한 무슬림들의 심리적 충격과 분노를 상상해 보라.따라서 이번 사태는 서구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오만이 무슬림들의 분노와 폭력을 유발한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다. 동시에 이번 사태는 언론의 표현자유와 종교적 신성성 간의 단순대립으로 보는 유럽의 인식이 크게 잘못됐음을 잘 말해준다. 더욱이 문제가 확산된 배경에는 무슬림들이 이번 사태를 우발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데 있다. 지난해 9월 덴마크 신문에 이 만평이 게재됐을 때 무슬림들은 이 소식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이슬람권의 유엔격인 이슬람회의기구 사무총장의 외교적 항의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최근 들어 유럽 7개국 12개 언론 매체가 일제히 다시 전재해 전 세계 무슬림들의 관심을 촉발시킴으로써 사태가 악화됐다. 이는 매우 의도적이고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유럽은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500년 가까이 이슬람 세력에 점령당하거나 위협에 시달려 왔다. 유럽인들의 이슬람 혐오증과 이슬람의 급격한 성장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런 유럽에 지금 1500만명가량의 무슬림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가톨릭에 이어 유럽 제2의 종교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마드리드와 런던에서 참혹한 테러를 저지른 세력이 바로 이슬람계로 알려지면서 유럽의 반이슬람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이민자 집단과 소수종파에 대해 관용적이고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주던 유럽사회가 이슬람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한편 이슬람이라는 자신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고 마호메트라는 삶의 모델이 훼손당하는 상황에서 일부 급진적 무슬림들의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지금 이 시각 폭력은 마호메트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이슬람권 내부의 자제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그만큼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입은 정신적 쇼크와 응어리는 1988년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사건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국민 정서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이슬람 각국은 유럽과의 외교ㆍ통상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무역의 상호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장기화되리라고는 보지 않지만,만화 한 컷의 무지가 가져다준 후유증 치고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혹독하다. 우리는 지금 문화의 다양성이 기본 축이 되는 공존과 화해의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촌 최대 문화권인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표하지 않는 일부 유럽언론의 태도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것은 언론의 표현자유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인간의 종교적 본성과 인류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동시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슬람 세계도 적극적인 설득 노력과 평화 이미지 구축을 하지 않는다면,이슬람의 폭력성은 지구촌에서 쉽게 바꿔지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