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의 지분을 고작 3.3%밖에 갖고 있지 않은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몸통을 뒤흔들고 있다. KT&G에 경영권 싸움을 걸어와 주목받고 있는 아이칸은 타임워너의 분사와 200억달러의 자사주 매입 외에도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요구하고 있어 기업 사냥꾼이 마음만 먹으면 지분에 관계없이 경영권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월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탄탄한 기업도 언제든지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이칸의 자문회사인 뉴욕 투자은행 라자드는 7일(현지시간) 343쪽에 달하는 방대한 타임워너 구조조정계획 보고서(라자드 리포트)를 통해 "회사를 4개로 쪼개고 200억달러(19조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며 딕 파슨스 CEO를 포함한 경영진을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회사를 아메리카 온라인(AOL)·콘텐츠(영화 및 TV)·출판·케이블 부문 등 4개로 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타임워너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체 AOL,영화배급사 워너 브러더스,시사주간지 타임,케이블채널 HBO,뉴스채널 CNN,케이블 부문의 타임워너케이블 등을 운영하고 있다. 라자드는 이와 함께 자사주 매입 규모를 200억달러로 늘려 획기적인 주가부양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자드 대표인 와서스타인은 "덩치만 큰 거대 조직에 틀어박힌 경영진 때문에 타임워너의 주가는 몇 년째 주당 17달러를 맴돌고 있다"며 "회사를 4개로 쪼개고 200억달러의 자사주를 매입할 경우 주가를 26.6달러까지 50%가량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라자드가 자신들의 고객일 수밖에 없는 블루칩 회사와 대리 전쟁을 벌이는 것도 타임워너 분쟁의 색다른 측면이다. 아이칸측은 오는 5월 열리는 타임워너의 주주총회에서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딕 파슨스 회장 겸 CEO를 내쫓은 뒤 라자드 대표인 와서스타인을 회장으로,현 사장이면서 2인자인 제프리 뷰크스를 CEO로 선임한다는 방침까지 결정해 놓았다. 아이칸이 확보한 타임워너의 지분은 3.3%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경영진 교체까지 요구하는 것은 주가가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데 불만을 품은 상당수 주주들에게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따른 것이다. 타임워너는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와 베어스턴스를 자문사로 선정하고 정면 대응에 나섰다. 또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왈리드 빈 탈랄 왕자 등의 지지를 끌어내면 아이칸측의 공세는 금방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그러나 아이칸측의 주가 부양 방법에 솔깃한 투자자가 상당수인 점을 감안하면 타임워너가 경영권은 지키더라도 상당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