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강형주 부장판사)는 8일 계열사 자금 286억원을 횡령하고 두산산업개발의 2838억원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박용오 박용성 전 두산 회장들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했다.


또 박용만 전 부회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40억원이,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이재경 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과 강문창 두산중공업 부회장 등 공범으로 기소된 전문 경영인들도 모두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수년간 계열사를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대주주의 생활비와 세금으로 사용해 두산그룹과 국가의 신용도를 떨어뜨렸으므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른 형제들과의 공모 혐의를 부인해 온 박용오 전 회장에 대해서도 "비자금 조성과 생활비 유용, 분식회계 등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들이 횡령한 돈을 모두 갚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형 경제사범을 엄단하겠다고 밝혀온 법원이 이날 수백억원의 자금을 횡령한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솜방망이'처벌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두산그룹은 이날 안도의 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오너 형제들이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기 때문이다.


두산은 당초 집행유예를 기대하면서도 수감 실형이 선고될까 노심초사해 왔다.


두산의 법정 대리인을 맡은 김&장이 과거 최태원 SK 회장의 법률대리인으로서 선고 전날까지 집행유예를 확신했다가 최 회장이 수감되는 실형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는 탓이었다.


재계는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데는 선고에 앞서 두산이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 로드맵을 확정해 발표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쨌거나 박 전 회장과 박 전 부회장은 집행유예 선고를 받음에 따라 향후 운신에 큰 부담을 덜게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직,국제유도연맹(IJF) 회장직 등을 보유하고 있는 박 전 회장은 이번 선고에 대한 각 조직의 최종 판단 및 조치를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회장은 특히 IOC 위원직을 유지할 경우 당장 2014년 강원도 평창에 동계올림픽 개최를 유치하는 대외 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상업회의소 회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두산중공업의 등기이사직도 계속 맡을 전망이다.


박 전 부회장 역시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현재 맡고 있는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등 6개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직과 ㈜두산과 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상법과 증권거래법상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김홍열·유승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