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외교부의 5개월의 엠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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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낙점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하자 대안을 찾은 것이다.
공식 발표전 엠바고(보도유예) 요청도 동시에 이뤄졌다.
14일 공식발표됐으니 무려 4개월이 넘게 엠바고가 유지된 셈이다.
이는 잠재적 경쟁자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로 프로파일'(low profile·저자세)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낮은 포복으로 상대의 집중포화를 피하면서 고지에 최대한 접근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떠들면서 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외교라는 게 그만큼 민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지나친 로 프로파일 전략이 몸을 숨길 수는 있지만 솔직하지 않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 장관은 지난달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도 차기 유엔사무총장 후보를 내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후보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가 난감했겠지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린 상황에서의 언론플레이치고는 지나쳤다고 볼 법도 하다.
게다가 한국은 국내외에서 북한 인권과 위폐문제,중국의 교과서 왜곡 사태 등에서 나타났듯이 민감한 사안에서는 공식 입장을 개진하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한 외교로 일관한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대통령과 맞먹는 정치적 파워를 갖는다.
반 장관이 선출된다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지명도가 한 단계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 당국자도 "최소한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총장을 맡을 때 생길 수 있는 컨트리 리스크는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제 출사표와 함께 반 장관의 위치와 전략은 노출됐다.
더불어 한국 외교의 지향점과 역량도 국제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복마전처럼 얽힌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한국 외교가 어떤 좌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 반 장관의 선거 전략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심기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