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장인 윤모씨(43)는 지난 주말 봄 양복 한 벌을 새로 사기 위해 백화점 남성복 매장을 찾았다가 기분만 상했다.


정장 신제품들이 하나같이 배 나온 체형인 그의 몸에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의를 어깨 너비에 맞춰 고르면 허리가 심하게 조이고,허리품이 맞는 옷은 어깨 부분이 많이 남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는 것.결국 기성복 구입을 포기한 그는 "배 나온 사람은 기성복 정장을 입지 말라는 얘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패션업체들이 기성복으로 내놓는 남성 정장이 '슬림화'로 치닫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 정장은 '5드롭(양복의 어깨둘레와 허리둘레의 차이를 나타내는 단위·1드롭은 2cm)' 패턴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6드롭,7드롭 패턴이 일반화하더니,올 봄에는 급기야 8드롭 제품까지 새로 나왔다.


8드롭이면 어깨와 허리의 둘레 차이가 무려 16cm나 된다는 얘기.운동으로 다져진 역삼각형 몸매가 아니면 좀처럼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이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정장이 이처럼 슬림화하는 것은 영화 '태풍'의 장동건,'야수'의 권상우,'프라하의 연인' 김주혁,'이 죽일 놈의 사랑'의 가수 비 등 부드러우면서도 야성미 넘치는 남성상이 최근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듯 부드러운 남성을 뜻하는 '위버 섹슈얼' 경향이 남성 정장 디자인에도 영향을 줘 어깨와 가슴은 볼륨감 있게 부각시키고 대신 허리는 날씬하게 좁히는 패턴이 유행하고 있다.


제일모직 갤럭시는 올 봄 신상품으로 가슴과 허리의 폭 차이가 14cm에 이르는 7드롭 패턴을 새롭게 선보인다.


'리미티드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제품군은 과거 같은 사이즈 단위의 5드롭 패턴보다 허리둘레를 대폭 줄이고,어깨 너비는 조금 넓게 만들었다.


그간 정장의 슬림화를 주도했던 LG패션 마에스트로는 아예 8드롭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지난해 6드롭과 7드롭 제품의 패턴 체계를 완성한 데 이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대신 기존 5드롭 패턴은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기성복 정장이 이처럼 슬림화로 치달으면서 '배불뚝이' 남성들은 맞춤 양복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맞춤 양복점 체인을 운영하는 정근호 라이프어패럴 대표는 "최근 자신의 체형에 맞는 맞춤 양복을 찾는 40~50대 남성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맞춤 양복점들도 가격대를 30만원대로 낮추며 이 같은 수요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