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당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라는 무언의 행동이 아닐까 싶다. 집 전화번호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 세 편이 14일 인터넷(www.ktfilms.com)을 통해 개봉됐다. '3인 3색 러브 스토리:사랑즐감'이라는 제목으로 KT가 제작한 단편영화 모음이다. 영화는 집 전화번호를 매개체로 이뤄지는 인연과 사랑을 그렸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늑대의 유혹'의 김태균 감독,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정윤철 감독의 단편 '폭풍의 언덕'은 꿈속에서 얻은 전화번호를 매개로 인연을 이야기한다. 스물다섯의 취업 재수생 승민(정의철 분). 그는 자꾸만 꿈속에 나타나는 이름 모를 여인이 팔뚝에 적어준 전화번호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이정아'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폭풍의 언덕'은 꿈속의 여인이 읽어보라고 권한 책. 승민은 꿈속의 여인이 말해 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이정아를 찾고 한 여중생을 만난다. 영화 '폭풍의 언덕'은 전화번호를 통해 인연을 이야기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때때로 상대가 동성이라고 해도 운명적인 인연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극중 인물들은 열린 시선으로 사랑을 말한다. 전화번호 하나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감독의 능력이 놀랍다. 김태균 감독은 'I'm O.K.'에서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이종격투기 선수와 한 여자의 우연한 동거를 다뤘다. 영화에서 전화번호는 애절한 이들의 사랑을 대변하는 매개체다. 어린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윤(칼 윤)은 무작정 엄마를 찾겠다고 한국으로 온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불법 격투기 경기장에서 '맞아주기 전문 선수'로 일하는 윤은 어렵게 방을 얻지만 어느날 갑자기 은영(소유진)이 방 주인이라며 나타난다. 은영은 함께 살던 남자친구가 출장을 다녀온 사이 보증금을 빼서 도망쳤기 때문에 방에서 그를 기다리겠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방이 아니고는 갈 곳 없는 두 사람은 소파를 경계로 동거를 시작한다. 'I'm O.K.'에서 전화번호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말로 표현 못하는 사랑의 상징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전화해"라며 은영이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윤에게 적어주는 집 전화번호에는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은영을 연기한 소유진은 특유의 발랄함으로 사랑을 잘 담아냈다. 곽재용 감독의 '기억이 들린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기억은행이 존재하는 가까운 미래를 그린 판타지 영화로 경민(이천희)과 유미(손태영)의 짧은 만남과 긴 여운이 남는 사랑을 그렸다.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