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침묵은 깨어지지 않고/정적은 아무런 계시도 보여주지 않고/속삭이듯 들리는 단 한마디라곤 버냉키?' 76억달러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스타르크 인베스트먼트의 펀드매니저 마이클 로스(51)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정기보고서를 이렇게 시작했다. 다름 아닌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가 앨런 포의 시 '갈까마귀(The Raven)'의 한 구절이다. 다만 원작에 나오는 '레노어(Lenore)!'를 '버냉키?(연방준비제도이사회 신임 의장)'로 바꿨을 뿐이다. 로스는 보고서에 '갈까마귀'를 약간 각색한 시를 세 장 반이나 실었다. 이를 통해 신임 버냉키 의장에 쏠린 눈과 최근의 경제상황 및 투자환경을 묘사했다. 투자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물론이다. 미국 헤지펀드의 펀드매니저들 사이에 유명한 시와 소설 인용하기가 한창이다.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최근 헤지펀드들이 난립하면서 9000여개로 늘어났다. 우수한 수익률을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좋겠지만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비)투자자를 위한 보고서에 온갖 유혹의 말을 싣고 싶지만 증권 당국의 규칙 위반이다. 그저 수익률과 투자공식을 사용한 교과서적인 보고서로는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들다. 그래서 찾아낸 게 일종의 '패러디'다. 시인 중에서는 포,소설가 중에서는 멜빌의 작품을 펀드매니저들은 선호한다. 특히 멜빌의 소설 '모비딕(백경)'에 나오는 포경선의 선장 에이허브(Ahab)를 자신들과 비교하곤 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