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인수합병(M&A)으로 몸집 불리기에 성공한 이랜드가 기존의 '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벗고 고가 의류 생산.유통 그룹으로 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M&A를 통해서다. 고가 브랜드 기업을 집중 인수해 자연스레 그룹 이미지를 바꿔나간다는 전략. 이런 방침아래 다음 '먹잇감'으로 백화점 입점 고가 브랜드를 갖고 있는 패션업체를 정조준,이번주 중 인수계약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랜드 헌트 등 중저가 의류 브랜드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체력을 비축한 이랜드는 최근 공격적인 M&A로 몸집을 불려 재계 37위(2004년 말 자산 기준,공기업 제외)의 그룹으로 도약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는 패션 부문에서 1조원,뉴코아 해태유통 등 유통 부문에서 3조원의 매출을 각각 올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랜드가 보유한 패션브랜드는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가두점에서 판매되는 저가 브랜드다. 유통 부문 역시 기존의 초저가 패션몰 '2001아울렛'부터 법정관리 기업을 넘겨받은 NC백화점,킴스클럽(할인점),해태유통 등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이랜드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저가.박리다매 전략과 공격적인 법정관리 기업 인수가 그간의 성장동력이 돼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랜드=중저가' 또는 '뉴코아=한 번 부도났던 곳'이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둘 경우 향후 그룹 성장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저해요인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는 이에 따라 최근 패션사업 전략을 중.저가에서 고가로,캐주얼에서 여성정장으로,가두점 사업에서 백화점 입점으로 180도 수정했다. 이 같은 목표를 실현시킬 방법으로 신규 브랜드 개발보다는 기존 업체 인수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새로 만들어 키우는 것보다는 쓸만한 것을 인수하는 게 빠르다"는 박성수 회장의 경영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회사 내부에선 저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아예 그룹 문패를 바꿔다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뉴코아,해태유통,삼립개발 등 이름과 이미지가 제각각인 인수 기업을 하나의 끈으로 묶는 기업이미지 통합(CI) 작업을 할 때 저가 이미지의 '이랜드' 대신 제3의 명칭을 그룹명으로 내세우자는 것. 이에 대해 이랜드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원하는 만큼의 M&A가 다 끝나지 않아 CI에 대해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뿐,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랜드가 이처럼 거침없이 유력 기업을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은 '세일 앤드 리스백'(sale and lease-back) 등의 금융기법을 동원해 외부 자금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2001아울렛을 인수할 때는 싱가포르투자청에 5000억원을 들여 이 회사 건물을 대신 매입하도록 한 뒤 임차하는 방식을 택했고,올림푸스백화점 신세화백화점 삼립개발 등을 사들일 때도 이들 회사의 부동산을 활용해 유럽계 펀드 등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