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산업자원부는 업종별로 온갖 법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두가 규제완화의 흐름에 따라 산업발전법으로 통합됐고, 법의 초점도 개별 업종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나 규제가 아니라 간접적 기능 위주로 달라졌다. 그후 산자부 공무원을 만나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어졌다는 하소연을 곧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업계의 자율성은 그만큼 높아졌고 산자부에 대한 로비는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로비할 일이 없어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KTF가 대외협상팀을 두고 공정거래위 통신위 정통부 국회 등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SK텔레콤 LG텔레콤 등 다른 통신서비스 회사들도 남의 일이 아니란 듯 걱정하는 눈치다. 기업들이 대외협력팀을 가동하는 것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뭔가 부당한 로비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고 그 과정에 부정부패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란 추정이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도 '규제 있는 곳에 로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통신분야만큼 규제가 많은 곳도 없다. 법령에 고시, 그리고 행정지도 등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다른 분야들에서는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통신분야에서의 체감적인 규제 강도는 오히려 갈수록 더해지는 것같다. 물론 통신분야의 규제 중엔 반드시 필요한 것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환경이 변화하고 업계가 성숙함에 따라 충분히 완화될 수 있는 것도 적지않은데 도무지 변화의 조짐이 안보인다. 그 결과 업계는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랐다가 억울하게 공정위에 당하는가 하면 지킬 수 없는 통신위 지침들 때문에 제재 받기에도 바쁜 실정이다. 게다가 정통부 정책 중엔 업계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도 적지 않다. 최근 정통부와 방송위간 통방융합 갈등에서 보듯 업계로서는 갈피를 잡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의 간섭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국회마저 이에 동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업계로서는 이래저래 곤혹스럽기만 하다. 통신요금마저 정치적 이슈로 변질돼 버린 느낌이고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외국업체들이 국회와 시민단체 때문에 어디 사업 제대로 하겠느냐는 말을 하겠는가. 이들이 그런 소리를 할 정도면 우리 업체들이 느끼는 바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로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추측이긴 하지만 로비가 무슨 특별한 이익을 노려서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목적이 훨씬 강할 수도 있다. 제일 좋은 것은 로비를 할 이유를 없애는 것이다. 반드시 있어야 할 규제라면 예측가능하게 해주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자의성 규제들은 없애는 것이 첩경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업들이 비싼 인건비 주고 많은 사람들을 대외협력하는 데 투입할 까닭이 없다. 지금 통신업체들은 제발 좀 내버려뒀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