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에 걸쳐 '경제 애국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자국의 주요 기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차원의 방어책이 속속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됨에 따라 자칫 전 세계에 걸쳐 자유 시장경제 질서가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차원 방어책 속속 도입 FT에 따르면 프랑스 상원은 21일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들이 포이즌 필(독소조항)을 포함한 기업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자국기업 보호를 위한 일반 목적도 있지만 세계 1위의 철강업계 미탈 스틸이 프랑스 룩셈부르크 스페인 합작 철강사인 아르셀로를 인수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재무장관 지울리오 트레몬티는 "그동안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시장경제 지향적인 국가였지만 프랑스 등의 자국기업 보호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관련 법규를 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있다며 적대적 M&A 방지장치를 곧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란드 정부도 유럽연합(EU) 집행위가 이미 승인한 이탈리아 은행 우니크레디토의 자국은행 HVB 인수를 저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또 스페인은 자국의 전력회사인 엔데사를 독일 에너지 그룹 에온(E.On)이 인수하려는 것에 대해 '에너지 안보'와 '일자리 보호' 등의 이유를 들며 정·재계가 모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시장경제정신 위배" 목소리도 이처럼 유럽 대륙에 '경제 내셔널리즘'이 급속히 확산되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다국적기업들의 사업 확장에도 차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에온의 엔데사 인수건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처리과정이 현재 유럽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경제 애국주의' 의 향방을 결정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에온의 엔데사 인수 건이 워낙 규모가 큰 데다 그동안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던 스페인 기업들 역시 해외에서 유럽 내 다른 나라의 보호주의 장벽에 의해 방해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유럽의 한 재계 인사는 "기업들이 유럽의 시장 개방으로 마련된 기회를 잡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각국 정부의 애국주의적 태도로 이 같은 기회가 위협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정부가 에온의 인수 제의를 무산시킬 경우 다른 나라 정부에도 똑같이 보호주의 명분을 주게 될 뿐"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 같은 보호주의는 결국 이제 막 회복 국면에 들어간 유럽경제 전체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