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8000억원 기부를 계기로 다른 기업들도 어떤 식으로든 기부액수를 늘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일까. 기업은 지금도 수많은 주주들과 채권자들과 소비자,근로자들과 정부에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적' 책임이 또 등장한 이유는 법이나 계약으로 생겨난 것 이외의 다른 책임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거기에는 대개 가난한 사람과 예술가와 학교를 돕는 일들이 포함된다. 금감원이 은행들에 권고한 사회적 책임의 항목에는 지역사회 공헌,토종 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결국 기업이 법이나 계약을 통해서도 책임을 부담하지만,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돈과 시간을 나누어주라는 것이 사회적 책임의 내용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경제발전을 추동해온 것은 자선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윤추구 활동이었다. 18세기 말 역사상 최초의 산업혁명이 뛰어난 과학자들을 가진 프랑스가 아니라 장사꾼들의 나라였던 영국에서 일어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든 경제발전은 이윤추구 행위에서 나왔고,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혜택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기업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물론 기업의 이윤추구에는 몇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정직한 이윤이어야 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어낸 이윤이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못한다. 다음으로 경쟁기업 이외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공해 물질 같은 것은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직하게 이익을 얻으려면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신제품과 신기술에 대한 투자,새로운 경영기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투자를 얻어내기 위해 높은 수익을 돌려주어야 하고 좋은 노동자들을 뽑기 위해 좋은 근로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고용도 일어나고 추가 투자도 일어난다.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은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예술가,대학생의 처지를 좋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만큼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돈은 줄어든다. 근로자에게 지급될 돈 역시 마찬가지다. 로열더치셸그룹처럼 사회적 책임을 위해 아예 기업의 조직과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바꿀 경우 그 부작용은 더욱 심각하다. 생산성은 낮아지고 비용은 높아지며 이윤 자체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거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은 수혜자의 이익에 비해서 늘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그건 기업이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투자가 많아야 여론이 좋아지고,결국 정부로부터의 불이익을 줄일 수 있다면 당연히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 자발적으로 투자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기업이 체제의 보존을 위해 투자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이유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세금도 내고 스스로 보호도 해야 한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기업이 사회에 대해서 수전노처럼 행동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기업의 본질이 이윤추구라는 원칙은 분명히 서 있어야 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