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비정규직 법안이 지난달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됐다. 2004년에 입법예고가 이뤄진 후 2년 동안 정치권에서 허송되다 입법안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초안에 담겨있던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고려가 약화됐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돼야 한다. 입법안이 통과되기 직전까지 각계가 수정제의한 안을 살펴보면 노동시장 유연성의 관점은 점차 약화돼 왔다. 우선 비정규직 차별해소라는 법내용의 측면에서만 살펴보면, '정부초안민주노총 안'의 순서로 평가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초기부터 일관된 강경노선을 견지해왔고 오히려 재계와 한나라당 수정안이 정부초안을 넘어서 노동계안쪽으로 수렴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즉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논의의 중심축이 노동시장 유연성보다는 현상적인 차별해소 방향으로 기울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입법내용에서 노동시장 유연성과 비정규직 차별해소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다수의 비정규직 보호에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구체적인 입법사항들을 살펴보자.먼저 정부초안에 의하면 기간제 근로의 경우 사용기간이 3년으로 돼 있는데 현재의 입법안은 2년으로 돼 있다. 2004년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2년으로 사용기간을 제한할 경우 법의 적용대상 근로자는 104만명이다. 3년으로 제한할 경우 74만명이다. 따라서 기간상한을 3년에서 2년으로 조정할 경우 대상 기간제 근로자 수는 30만명 증가한다. 입법 후 대상 기간제 근로자가 모두 정규직화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3분의 1은 정규직화하고 3분의 1은 다른 비정규직 직종을 찾고 3분의 1은 실업자화 한다면 2년의 기간제 상한이 34만7000명의 정규직화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34만7000명만큼의 실업자를 양산한다. 바로 입법이 고용형태 양극화 내지는 사회양극화를 촉발하는 것이다. 기간사용제한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전제돼야만 한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생산성 제고와 정규직 과보호 해소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대책이 없다면,입법의도와는 반대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비중은 3분의 1ㆍ4분의 1ㆍ5분의 1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비정규직 입법 쟁점은 불법파견이다. 현재 불법파견 시비가 일고 있는 사내하청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파견법은 1998년 2월에서야 제정됐는데,이 법에 의해 이미 존속돼온 관행이 최근에 와서야 불법화된 부분이 있다. 과거의 관행이 잘못됐다면 1998년 파견법을 제정한 당시부터 행정지도를 하면서 점진적인 개선을 유도했어야지 최근에 와서야 입법을 통해 일시에 고용의제를 적용하자는 것은 정책실패의 책임까지 모두 기업에 전가시키는 문제가 있다. 불법파견 유인은 입법만으로는 해소될 리 없다. 기업의 경쟁력과 생존의 측면을 고려해 근로자 공급사업에 대한 노동법상 과다규제가 합리적으로 재조정돼야 한다. 또한 수동적으로 불법,합법의 판정관 역할에서 정부의 사전예방적인 지원 및 지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추후 파견기간 범위도 확대된 포지티브 방식으로 조정하되 파견사용 실태 점검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필자는 비정규직 정책 마련시 노동시장 유연성과 비정규직 차별해소의 조화라는 대원칙을 잊어선 안 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한 보완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차별해소 입법은 실업자를 증가시키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