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원에 사서 1만8000원에 팔아라!"


과거 제일모직의 주가 전망을 물으면 증권사 애널리스트 뿐 아니라 회사 임직원들조차 이렇게 조언하곤 했다.


특별한 모멘텀 없이 매번 '고만고만한' 실적을 내는 회사이니 1만원대 박스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랬던 제일모직이 달라졌다.


지난해 7월까지만해도 1만5000원 안팎에 머물던 주가가 갑자기 가파르게 상승하더니 최근에는 3만7000원을 넘어섰다.


사상 최대의 당기순이익(1514억원)이라는 지난해 실적 발표로 상승세가 더 이어지는 분위기다.


옷감을 만드는 회사에서 첨단 소재 회사로의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시장에 널리 퍼진 때문이다.


70년대까지 옷감 회사였던 제일모직은 80년대 패션,90년대 화학 등 10년 단위로 사업 구조를 바꿔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2004년 초 부임한 제진훈 사장이 있다.


그는 사람(people)과 프로세스(process) 제품(product)의 '3P'를 혁신해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성장한다는 목표 아래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혁신의 주체는 사람(people)


"회사일이 많이 재미있습니다.


Novelty(새로운 것)를 많이 생각하는 학교와 달리 Customer(고객)에 우선순위를 두는 등 생각하는 게 달라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중략) 이렇게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사장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김상균 책임연구원이 지난달 20일 제 사장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의 일부다.


제 사장은 김 연구원같은 최우수 인재를 뽑기 위해 1년에 1000시간을 미국 유럽 러시아 인도 등 세계 각지로 돌아다닌다.


2004년 170명에 불과하던 연구인력은 현재 350명에 달한다.


연말엔 4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핵심인재가 기업의 미래'라는 생각에서다.


"부임 직후에 보니까 연구원 중에 하버드 MIT 박사 출신이 한 사람도 없더군요.


이런 사람들은 몸값이 비싸니까 제일모직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던 거죠.이달 중에 하버드와 MIT에 직접 리쿠르팅하러 갑니다."(제 사장)


제 사장은 "우수한 인재를 얼마나 빨리 적응시키고 오랫동안 일하게 만드느냐가 최고경영자(CEO)의 책무"라고 말했다.


그는 부임 후 연공서열을 파괴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계층별로 돌아가며 혁신과 리더십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왔다.


"삼성그룹의 인재사관학교인 제일모직의 전통과 상징성을 승계,발전시켜야 한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도 큰 힘이 됐다.


◆적시에 생산해 적시에 판매(process)


제일모직 출신으로 삼성물산 삼성캐피탈에서 '외유'하다 돌아온 제 사장은 2004년 서울 역삼동 본사의 사무기기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녹슨 철제 책상에 컴퓨터는 겉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제 사장은 10억원을 들여 사무기기를 모두 새 것으로 바꾸도록 했다.


첨단기업에 맞는 업무 방식을 갖추려면 이에 맞는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제일모직은 그해 3월 국내 업계 최초로 패션부문에 단납기(JIT)시스템을 도입했다.


판매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다음 날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재고를 없앤 것.JIT는 재고를 줄여 이익률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


빠르고 안정적인 납기를 위해 원부자재 품질관리시스템을 만들고 생산단계별로 품질개선소위원회 활동을 펼쳤다.


패션부문의 성공사례는 성장동력인 전자재료 부문에 좋은 귀감이 됐다.


제품주기가 빠른 전자재료 산업의 특성상 '시점과 스피드'가 중요하기 때문.전상문 전자재료 부문장(전무)은 "적시에 필요한 제품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으로 승부했다"며 "이를 위해 연구개발(R&D)과 혁신역량 강화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라(product)


"석유화학은 원래 양으로 승부하는 구조입니다.


최근 다른 업체들은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증설을 통해 최대한 규모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죠.하지만 제일모직은 '고수익 스페셜티'제품으로 차별화를 노렸습니다."


지난달 8일 기업설명회(IR)에서 우상선 케미칼 부문장(부사장)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한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고 남들이 만들지 않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했다는 것.


패션사업의 경우도 골프웨어인 아스트라,여성복 엘르 등 경쟁력 없는 브랜드는 아예 철수하고 빈폴 등 몇개의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해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제일모직의 제품 혁신은 전자재료 부문의 비중 확대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9년 270억원에 불과했던 전자재료 사업의 매출은 지난해 2173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3%에 달한다.


2008년에는 1조원의 매출을 이 분야에서 올린다는 계획.미국 듀폰이나 일본 도레이 같은 첨단 소재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은 "시장에서는 제일모직이 변화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혁신의 기틀을 마련했을 뿐 진짜 변화는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