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외국드라마 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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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언제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야.올라갈 때 조심해야지."
미국 슈퍼볼 스타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가 아들의 MVP 수상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했다는 얘기다.
당연한 말 같지만 잘 나갈 때 그렇지 못할 때를 생각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흔하지 않다.
세상 일은 묘해서 성공 요인이라 믿었던 특성이 실패의 원인이 되는 수가 많은데 대부분은 실패의 조짐이 완연할 때까지 그걸 모른다.
성공이나 승리에 도취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탓이다.
아시아 각국에서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다고 하는 동안 국내에선 젊은층의 우리 드라마 기피 현상이 생겼다고 한다.
1992년 30.9%이던 20대 여성의 시청률은 지난해 15.6%로 뚝 떨어졌고,30대 역시 30.6%에서 22.2%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대신 외국드라마 팬이 급증했다는 건데 이는 케이블TV의 외화시리즈 홍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과학수사대(CSI)''CSI 마이애미''특수수사대 SVU''실종수사대''라스베가스' '닥터 하우스''위기의 주부들''펠리시티'등 미국 게 많지만 일본 드라마도 적지 않다.
외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의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제재와 치밀한 구성,풍성한 지식과 정보,깊이있는 대사,삶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CSI'엔 과학 및 의학 정보와 저마다 약점을 지닌 수사대원들의 고뇌,'닥터 하우스'엔 정확한 진단에 의해 치료를 최소화하려는 괴짜의사의 인간애가 있다.
일본 드라마 또한 우리 드라마에선 찾아보기 힘든 사실적 내용을 다룬다.
출생의 비밀,불치병,교통사고,재벌 2세의 사랑 놀음 등 상투적인 내용으로 일관하는 우리 드라마에 질린 시청자들이 외국 드라마로 눈을 돌린 셈이다.
그런가 하면 해외의 한류 열풍에도 이상 기류가 발생했다고 들린다.
항(抗)한류 내지 혐(嫌)한류 바람이 분다는 얘기다.
대만에선 유선방송의 경우 오후 6~10시엔 자체 제작드라마를 70% 이상 내보내라는 안이 제기돼 있고,중국에선 지난 1월 외국드라마 수입을 축소하고 황금시간대엔 외국드라마 방영을 제한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지침이 나왔다.
베트남 또한 황금시간대엔 '베트남 영화 및 드라마'를 방송하도록 규정했다.
이대로 가면 한류 열풍은 조만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국산 드라마의 수출선이 중동과 동유럽 남아메리카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곤 해도 그들 역시 언제 식상해 하고 방어벽을 칠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공중파 드라마는 여전히 뻔한 스토리와 성근 얼개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드라마는 제대로 된 것 하나가 시장을 독식하는 킬러콘텐츠다.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 돈 주고 사라고 해도 안산다.
욘사마 붐에 취해 있는 동안 일본 드라마는 소리 소문 없이 퍼지고 그 결과 일본 소비재는 국내 시장 공략에 성공하고 있다.
어쩌면 한류 바람의 뒤에서 분 역풍이 더 거셌는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의 한류 바람을 진짜 열풍으로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금이라도 인생에 대한 메시지가 있고 대사는 가슴에 와닿는,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탄탄한 작품을 내놓는 게 그것이다.
제작비 타령만 하지 말고.한국 드라마,이제 변할 때도 됐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