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단지공단의 이번 보고서는 산업단지 입지 정책을 수요자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산단공 관계자는 "전국의 산업단지 가운데 무리한 수요 예측 등으로 인해 중간에 개발이 중단되거나 장기 미분양 상태인 단지가 부지기수"라며 특히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하려는 지방자치단제들 간의 과당경쟁으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기 미분양·개발 중단…곳곳이 벌판


전라남도 여수시와 순천시,광양시 일대 280여만평에 조성할 예정이던 율촌제1지방산업단지는 1992년 5월 지방산단으로 지정받았으나 작년 말 현재 분양률은 18.7%에 그치고 있다.


당초 130만평을 자체 개발해 계열사 공장 부지로 쓰기로 한 현대차가 "투자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개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1단지의 배후지로 1997년 10월 지방산단 지정을 받은 율촌2단지도 현재 광양항로 준설공사를 위한 흙 투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무턱대고 단지 조성에 착수했다가 민간 개발대행 업체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개발이 중단된 경우도 허다하다.


경상북도 경주 일대 7만여평을 1995년 6월 산업단지로 지정받은 건천제2지방산업단지는 개발주체인 뉴경주개발주식회사가 부도나면서 버려져 있으며 충청북도 괴산산업단지 역시 1994년 개발주체인 진로의 부도(1997년 5월)로 51%의 공정을 보인 상태에서 지금까지 방치돼 왔다.


괴산단지는 최근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 컨소시엄이 단지 조성 사업기간을 3년 연장해주면 공사를 재개,2008년도에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재정에 부담


이처럼 오랫동안 분양이 안 되거나 개발이 중단된 지방산단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지자체와 정부 및 국민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전라남도는 율촌제1지방산단과 관련,올해부터 2011년까지 도 차원에서 직접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6년간 율촌산단 개발에 필요한 자금은 4000여억원.그러나 재정이 부족한 전남으로서는 지방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경상남도 사천진사산업단지의 경우 77만평 중 15만평을 외국인 임대단지로 용도를 변경하고 산업자원부와 지자체가 각각 510억원과 60여억원을 들여 개발했으나 절반 정도(55.3%)만 분양됐다.


이 지역에 들어오겠다는 외국인 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투자비 부담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는 셈이다.


전라북도 제2,제3지방산단은 2001년까지만 해도 장기 미분양 상태로 당시 투자금액 777억원 중 16%에 해당하는 340억원의 미수금이 발생,정읍시가 매년 재정적자를 거듭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기업들 수요 고려 않고 과잉 공급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산단공과 산업연구원 등은 기업의 산업단지 입주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산업단지 지정 및 개발이 이루어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산단공은 "장기 미분양은 △공급자 위주의 산업단지 개발 △지역 내 인프라 및 관련 산업의 미비 △용지가격의 경쟁력 열위 △분양 매각 위주의 토지처분 방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특히 1990년대 들어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산단공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지방산업단지 186개 중 115개(61.8%)가 1990년대에 지정됐다.


1960년대 7개,70년대 19개,80년대 16개에 불과하던 지방산단 조성이 90년대 들어 6~7배 대폭 증가한 것이다.


한편 산단공은 "이와 반대로 수도권과 같이 산업용지가 입지 수요에 비해 적게 공급되는 지역에서는 개별 입지를 중심으로 한 난개발이 성행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산업입지를 수요자 위주로 개발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계주·김현지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