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KT&G를 捨石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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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는 요즘 완전 동네북 신세다.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으로부터 적대적 M&A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정부에선 '경영진이 알아서 방어할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KT&G의 경영진이 경영을 잘해서 주가를 잘 관리했다면 지금 같은 곤경에 빠졌겠느냐"는 얘기도 했다.
3년 전 영국의 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대해 M&A 공세를 펼쳤을 때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그 땐 5%룰(경영 참여 목적으로 매입한 지분이 5%를 넘을 경우 신고 의무화)을 도입하는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원공세에 적극 나섰던 정부다.
지금은? "당시 경영권 방어 장치를 보완한 만큼 더 마련할 게 뭐 있겠느냐"는 게 정부의 답안이다.
SK 사태 때 백기사로 나섰던 국내 기업과 기관투자가 등도 반응이 영 달라졌다.
"애국심에만 근거해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기관도 한둘이 아니다.
지난 주 고위 경제관료 A씨,은행장 B씨,외국계 투자은행의 국내법인 대표 C씨와 함께 한 저녁자리는 이 문제에 관해 정부와 금융가의 속내와 시각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B행장="KT&G 경영진의 주가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외국 투기자본의 M&A 공세에 대한 대응은 별개 문제다.
KT&G가 민영화는 됐다지만 여전히 사실상의 독점기업이고,중요한 수출업체다.
내 자식 잘못이 있다고 남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자기가 입양해서 사람 만들겠다고 설치는 걸 두고 보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C대표="정부가 보다 줏대 있게 원칙을 세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나도 외국 금융자본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만,투기적 자본이 은행에 이어 주요 산업에까지 머니게임의 칼날을 들이대는 걸 그냥 놔두겠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미국은 엑슨-플로리오법을 제정해 국가적 이익이 심각하게 손상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외국기업의 미국기업 M&A 자체를 금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 '오버 스탠더드'로 나아가고 있다."
A관료="동북아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마당에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투자에 족쇄를 채우는 규제를 새로 도입할 확실한 명분이 없다는 게 고민거리다.
KT&G가 당하더라도 이참에 '국가 기간산업은 어떤 형태로든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민적으로 형성되고, 그런 목소리가 해외에까지 작용해 포스코나 KT 같은 초우량 기업들이 제2,제3의 KT&G가 되는 일이 없도록 손쓸 수 있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B행장,C대표="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사회적 공론화,여론 조성이라는 성스러운 제단을 위해 우량 국적기업까지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이 정부의 발상이란 말인가."
이날 저녁자리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정부의 KT&G 대응책이 원론 수준을 겉돌고 있는 가운데 외신은 고(高)수익에 굶주린 월가의 기업사냥꾼들이 세계 이머징 마켓을 뒤흔들고 있으며,아이칸의 KT&G 공격은 그 전초전이라는 뉴스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정부와 감독기관의 무능에 더한 무(無)소신이 국제 M&A 싸움꾼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치기 힘들다.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