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가 3·1절 골프로 사실상 사의를 표명하면서 청와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바로 수용할 수도,그렇다고 즉각 반려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의 9일간 아프리카 방문이 깊이 숙고할 유예 시간이다. 덕분에 24년 만에 한국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총리의 진퇴라는 국정 운영의 큰 변수를 놓고 고심하게 됐다. 청와대는 이번 사안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무엇보다 비중 있게 보는 분위기다. 물론 야당의 공세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선거에 대형 악재'라고 우려하며 비판에 나선 점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국면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까지 나서 이 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이번 일을 계기로 당과 나라의 기강을 확실히 세워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등 사퇴를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한 실무 관계자는 "골프 자체보다 함께 운동한 사람들의 면면이 어떻게 비쳐지겠느냐"며 목소리를 낮췄다. 물론 청와대는 "(9~14일까지의) 순방 후에 입장이 나올 것"이라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이처럼 청와대가 고민하는 것은 이 총리가 물러날 경우 향후 국정 운영의 틀이 바뀔 수 있다는 데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일상적인 국정을 모두 맡기고 자신은 양극화 문제 등 미래 과제에 전념한다는 입장인데 이 같은 분권형 국정 운영은 이 총리를 전제로 짜고 운영해 온 것이었다. 따라서 총리까지 교체하면서 내각 팀을 재정비할 경우 노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일할 시간과 기반을 크게 잃을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청와대 내부 기류를 보면 결국 이 총리가 유임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당 내부에선 "이 총리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는데 대통령이 반려할 경우 지방 선거는 물론 향후 정국에 대한 모든 책임을 청와대가 떠안게 된다"며 사표 수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더욱이 이 총리로부터 지난 4일 사의 표명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노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사실상 '이 총리 낙마' 쪽으로 마음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