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양안관계 '불구경' 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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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연 < 서울시립대 교수·정치학 >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국가통일위원회의 운영과 통일강령 적용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민주진보당이 추구해 왔던 대만의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으로 해석된다.
1990년 설치된 국가통일위원회의 중지는 지금까지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하에서 해협양안의 정치적 실체 인정,교류와 접촉,통일협상논의라는 통일방안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것으로서 이는 대만독립을 위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즉각적인 반응은 분명했다.
대만의 통일헌법개정과 독립추진은 양안간의 긴장을 촉발할 것이며 중국은 이를 강력히 저지하겠다면서 천 총통을 비난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 속에는 "천 총통의 언어적 유희"라면서 천 총통 개인의 말장난으로 애써 비하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천 총통의 표현은 '폐지'(terminate)가 아니라 '중지'(suspend)라는 것이다.
즉 대륙과의 협상 가능성은 열어둔 채 국제여론의 환기와 최근 하강국면에 있는 지지도 만회 및 정권재창출이라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천 총통의 정책에 대해 중국의 대응은 궁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대만독립선언일은 곧 무력침공 개시일"이라는 강경한 대독(대만독립) 저지를 표방한 중국이 무력사용도 불사할 수 있는 '반국가분열법' 발동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대만이 중국의 무력동원의 한계점을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서,일단 천 총통의 외교적·정치적 승리로 점쳐질 수도 있다.
1979년 대만과의 단교와 중국과의 외교정상화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 기초한 중국견제와 대만지원이라는 이중적 전략으로 나타났다.
대만과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는 대신 미 의회에서는 '대만관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대만에 방어용 무기 판매, 유사시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 등을 가능케 했다.
대만은 대만대로 민진당 집권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면서 독립수순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하지만 2006년 개헌,2008년 독립선언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으로의 국호변경과 대만독립을 선언할 국내외적 분위기는 무르익지 않았고, 중국은 대만이 여러 차례 중국의 의중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조치들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미사일 발사훈련 이외에는 실질적인 물리적 사용은 없었다.
또 사용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천 총통의 이번 선언은 실현되기 쉽지 않은 구두선언에 그칠 가능성도 엿보인다.
실제로 폐지 대신 중지라는 표현을 쓴 것도 미국의 견제의 결과이며,'양안관계의 현상파괴'를 원하지 않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만의 독립행보가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을 파견,대만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대만 내부에서도 이번 선언에 대한 지지여론이 20%대에 머물고 있고,국민당을 비롯한 반대세력도 천 총통의 파면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양안관계는 중국과 미국,대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양안관계에서의 현상파괴는 대만과 중국 간의 군사적 충돌뿐만 아니라 미국의 개입,전략적 유연성에 의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개입,북한의 대중국 지원 등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안보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에 따른 정치 경제적 이익과 미·일과의 동반자적 전략적 이익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의 폭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과 대만,그리고 미국과 일본과의 외교를 통해 불구경만 할 것(隔岸觀火)이 아니라 흙탕 속에서 고기를 잡는(混水摸魚) 실리적 전략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