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눈앞에 두고도 협상단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제적 FTA 추세에 뒤처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협상 개시에만 몰두한 탓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제2의 개항'으로 불릴 정도로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한·미 FTA 협상은 지난달 협상 출범 선언 후에야 협상단 구성 작업이 시작돼 아직도 조직 개편안을 놓고 부처 간 협의가 4주째 진행되고 있다. 미국측이 이미 협상 방향과 구체적 요구 사항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소 100명은 추가 확보해야 미 무역대표부(USTR)의 협상단은 139명. 모두 한 분야를 5~10년씩 다룬 전문가다. 또 한·미 협상에서는 다른 나라와의 협상과는 달리 지식재산권 노동 환경 분야 등도 다뤄진다. 즉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한국은 기존 협상단 60여명을 130여명으로 보강,총 동원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 협상단은 '동시다발적 FTA 추진'에 따라 캐나다 아세안(ASEAN) 멕시코 인도 등 4개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어 지금도 일손이 모자라다.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의 경우 FTA국 33명 중 절반가량을 신설된 '한·미 FTA 기획단'으로 돌릴 계획이지만 진행 중인 협상 탓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는 다른 부처도 비슷하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기존 협상팀 동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각 부처가 중간급 관리자(3∼5급) 수십 명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김종훈 한·미 FTA 수석 대표는 "인재풀이 넓지 않다"며 "우선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을 차출해 먼저 협상단에 투입하고 새로 사법연수원생을 뽑아 2~3개월 훈련시킨 뒤 교체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규채용 5월에나 가능할 듯 각 부처는 기존 협상팀에서 베테랑을 차출해 협상단 절반을 만들고 나머지는 신규 인력으로 메운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등은 '증원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부처 간 줄다리기가 4주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행자부 및 기획예산처 협의가 1~2주 내에 끝나도 부처별 직제 개편을 위한 대통령령 개정 작업 및 법제처 협의→차관회의 및 국무회의→부처별 시행규칙 개정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적어도 3주에서 한 달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신규채용 절차도 남았다. 공고부터 원서 접수,시험과 발표에 빨라도 3~4주가 소요되며 임용을 위한 신원 조회에 평균 한 달이 걸린다. 아무리 빨라도 5월 초까지는 충원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신규 인력의 질도 문제다. 행자부 관계자는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선 어학 능력과 협상력,행정력은 물론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열의도 가져야 한다"며 "민간에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고 우려했다. ◆협상 부실화 우려 한·미 FTA는 데드 라인(2007년 3월)을 정해 놓고 하는 협상이다. 이에 따라 협상단 구성이 지연돼도 협상을 늦출 수는 없다. 양국은 6일 사전준비 협의를 거쳐 각자 협정문 초안을 만들고 미 의회 검토(3개월)가 끝나는 5월 둘째주 이를 교환하며 6월 초 1차 본협상을 열기로 한 상태다. 협정문 초안은 협상 명칭부터 내용,분야 등을 담는 총론서.양국은 이를 토대로 협상 품목을 나열하고 구체적인 양허안이 담긴 부속서를 만들기 때문에 초안의 완성도가 협상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협상단이 5월에나 짜인다면 텍스트 작성·검토에는 일부만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 김 수석 대표도 "4월까지는 10여명의 핵심 인력으로 텍스트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의 협상도 부실해질 수 있다. 기존 협상단이 대거 차출되면 조직력이 와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동시다발적 FTA 전략은 칠레 싱가포르 등 작은 나라와 추진할 때나 가능하다"며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최고의 협상력을 가진 미국과의 협상을 다른 나라와 병행한다면 모든 협상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