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재개발 사업이 크게 혼탁해지고 있다.


상당수의 서울 뉴타운 지역과 수도권 재개발 사업장에는 주민들의 동의서를 먼저 받아 사업을 주도하려는 준비위원회가 3~4개씩 난립해 오히려 재개발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400여개로 추산되는 재개발 컨설팅업체(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체)들이 주요 사업장의 준비위원회 설립 과정에 개입해 과잉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개발 사업은 맨 먼저 준비위원회가 설립돼 재개발구역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거쳐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그 뒤 조합을 구성해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곳곳서 주민동의 '쟁탈전'


6일 업계에 따르면 광명7-1(철산 4-1) 재개발구역의 경우 6개 준비위원회가 들어서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곳은 준비위원회마다 정비 업체와 결탁,주민 동의서를 걷기 위해 외부 인력까지 투입하는 바람에 주민들 간 반목과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1만여평에 불과한 천호뉴타운 내 천호1구역도 4개 준비위원회가 활동하는 바람에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용인 신갈 재개발 구역도 3~4개 준비위원회가 구성돼 추진위원회 설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성북구 보문4구역은 이미 구청의 승인을 받은 추진위원회가 설립돼 있는 데도 준비위원회가 또 만들어져 주민 동의를 구하고 나서 당국이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뚝섬 성수동 2가 1동(19구역)의 경우 주민 50% 동의를 확보한 준비위원회 한 곳이 성동구청에 추진위 승인을 신청했으나 오히려 구청에서 다른 준비위원회와 합의할 것을 권유,불만을 사고 있다.




◆정비업체 난립이 과열경쟁 원인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정비 업체들의 과잉 경쟁이 꼽힌다.


안양시 부천시 용인시 등 수도권 지자체들이 지난해 말부터 일제히 재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400여개에 달하는 정비업체들 중에는 미리 시공업체와 손잡고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정비업체가 통장들을 동원해 동네마다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준비위원회 단계에서 정비업체들을 고용해 주민 동의서를 걷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렇지만 일부 정비업체들은 주민 동의서를 최대한 받아낸 뒤 다른 정비업체에 일정 지분이나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도시개발연구포럼 전연규 대표는 "혼탁해진 재개발 시장을 정비하려면 정비업체의 역할 등을 현재보다 제한하는 방향으로 현행 '정비사업 전문관리'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