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경제시대였던 1970,1980년대.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가끔 대형공사를 따내거나 큰 수출계약을 체결한 임직원을 불러 '007 가방'을 건네주곤 했다.


가방에는 대개 빳빳한 현금다발이 들어 있었다.


총수가 직접 지급하는 일종의 비공식적인 보너스였다.


투명경영의 잣대로 보면 이 돈의 출처를 놓고 꽤나 많은 논란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현대그룹의 전문경영인 출신인 이명박 서울시장이 현재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돼 있는 배경이나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지낸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이 1000억원대 삼성생명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이유도 과거의 보너스 지급관행과 연결시킬 수밖에 없다.


이 시장은 목표 달성에 대한 보너스로 나중에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뛰어오른 서울 강남 등지의 땅을 받았고 현 회장은 주식을 연말 보너스로 받았던 것이다.


요즘 샐러리맨들에게 이런 얘기는 그야말로 '전설'이 돼 버렸다.


전설의 주역들도 대부분 무대에서 퇴장했다.


대신 인사고과를 매기고 업적을 계량화해 이를 다시 보너스의 금액으로 환산하는 컴퓨터가 등장했다.


은밀했던 총수의 007 가방은 공개적인 인센티브로 전환됐고 그 방식도 다원화됐다.


돈은 여전히 강력한 인센티브 수단이지만 승진 휴가 스톡옵션 경력관리 등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 않게 됐다.


국내 기업들이 인센티브제 도입을 주요 경영전략으로 삼기 시작한 때는 200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이전의 경영코드였던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이 무너지고 '능력급' '세대교체' '핵심인재 영입' 등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면서다.


"하는 일이 다르고 기여하는 크기가 다른데 왜 똑같은 연봉을 받아야 하느냐"는 의문이 타당성을 갖게 되고 설득력을 갖추면서이기도 하다.


사실 기업의 경쟁력은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일치될 때 가장 극대화된다.


개인의 분발이 조직의 역량강화에 현저하게 기여하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지속적인 분투를 기대하기 어렵다.


종신고용 붕괴로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사라진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그 결과로 생산성이 높은 인재가 떠날 경우 그 기업에는 평균 이하의 생산성만 갖고 있는 사람들만 남아 있을 것이 뻔하다.


반대로 '총수의 가방'처럼 매력적인 보상이 대기하고 있는 기업에선 적지 않은 임직원들이 경쟁적으로 업무 성취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인센티브를 챙기는 일은 경제적 보상 외에 조직 내 평판을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결국 인센티브는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력한 방편이자 조직 내에 적절한 긴장과 경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포스코 등 주요 그룹들은 이 때문에 한번 만들어놓은 인센티브 제도를 계속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들에게 어떤 종류의 새로운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무엇을 보상해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수단과 목적의 합리성에 공감하면서 타인의 인센티브 수령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일단 성공"(삼성그룹 인사지원팀 관계자)이라는 얘기처럼 인센티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힘으로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