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프랭클린 펀드의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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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KT&G에 미국의 기업사냥꾼 리히텐슈타인과 아이칸이 잇따라 방문,'부동산을 팔고 자회사를 상장시키라'며 엄포를 놨을 때 KT&G 경영진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비록 우호지분이 많지는 않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외국계 펀드들이다.
특히 KT&G의 최대주주인 프랭클린 뮤추얼펀드는 지난 2000년부터 장기적인 투자를 해오며 경영진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다.
KT&G는 해외 IR(기업설명회)를 할 때마다 가장 먼저 프랭클린 펀드를 찾아 회사 현안을 설명했다.
프랭클린측도 "현 경영진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헤지펀드 등에 휘둘리지 말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런 프랭클린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아이칸측 사외이사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표를 했다.
KT&G가 느끼는 당혹감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프랭클린은 주주총회를 10여일 앞두고 '굳이 안해도 되는' 지지성명을 내놓았으며 주식도 추가로 사들였다.
최대주주가 아이칸을 밀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공표해 아이칸측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성의까지 보인 것이다.
프랭클린은 KT&G가 우호지분 확보 차원에서 자사주 매각 등을 검토하고 있는데 대해 경고성 발언까지 했다.
더 나아가 "수익성을 높여 주주배당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차입경영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배당을 늘리기 위해 리스크를 짊어지라는 얘기다.
KT&G가 이미 순이익의 절반을 배당에 쏟아붓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에 따라 KT&G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프랭클린이 맞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번 사건을 통해 KT&G로선 국제 자본시장에선 이익 앞에 '적과 동지는 없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KT&G뿐만 아니다.
다른 상장사들도 비슷한 착각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우리 회사의 외국인 주주들은 배당 수익을 보고 들어왔으니까 단기적인 재료에 연연하지 않겠지' '설마 한국 땅에서 해외 기업의 적대적 M&A(인수·합병)가 이뤄지겠어'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것이다.
KT&G 사태는 이제 이런 순진함에서 벗어날 때라는 것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경봉 증권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