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밀로셰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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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는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만행이다.
죽이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일들이 조직적으로,대규모로,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계 2차대전 중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그랬고,그 후로도 아프가니스탄,르완다 등지에서 수십 아니 수백만명의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채 눈을 감았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코소보에서 일어난 인종청소는 현대 문명사회의 최대 비극으로 꼽힌다.
보스니아 내전은 1992년 세르비아계가 이슬람계 거주지역인 보스니아내 스레브레니차에 진입하면서 시작됐다.
무려 4년 동안이나 계속된 광란극으로 25만명이 목숨을 잃었고,인구 400만명 가운데 40%가 고향을 등진 난민이 되었다.
암매장된 시체들은 지금까지도 발굴되고 있으며 아직도 2만여명이 실종상태라고 한다.
코소보에서 1998년과 이듬해에 걸쳐 진행된 내전도 마찬가지였다.
세르비아인들은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코소보지역의 알바니아인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50여만명을 추방했다.
학살행위를 저지시키려는 국제사회의 조치와 비난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모든 학살극의 주인공은 '대(大)세르비아 건설'을 기치로 내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였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유고연방을 이끌었던 티토가 사망하자,세르비아인들의 민족주의에 편승하면서 지도자로 등장한 것이다.
급기야 그는 민중봉기로 하야했고, 2002년 2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
대량학살혐의로 재판을 받아오던 밀로셰비치가 엊그제 감옥침대에서 숨졌다는 소식이다.
자연사인지 독살인지 정확한 사인은 조사중이지만,역시 인종청소를 주도한 혐의로 수감중인 밀란 바비치가 같은 감옥에서 자살한 지 엿새 만에 발생한 것이어서 재판소측은 당혹한 표정이 역력하다.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도 단 한번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는 밀로셰비치를 보며,반복되는 비극의 역사가 언제쯤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인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