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가 급기야 '수출 차량 가격 인상'이란 모험에 나섰다.


신차가 아닌 기존 모델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환율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환율 영향이 없거나 '엔저(低) 효과'를 누리고 있는 미국 독일 일본 등 해외 경쟁업체들은 앞다퉈 '차값 깎아주기'에 나서고 있어 이번 가격 인상이 현대·기아차의 해외 판매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국내에서 생산한 차량을 해외 딜러에게 넘기는 가격을 평균 3% 인상하고,3월 수출 물량부터 적용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연식이 바뀌는 1월이나 다음 해 모델을 선보이는 7~8월께 모델 변경을 이유로 가격을 소폭 올린 적은 있었지만 현재 판매하는 모델의 차값을 갑작스럽게 인상한 적은 없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달 말 해외 딜러들에게 차값 인상의 배경을 통보하고 협조를 구했다"며 "선적 기간 등을 감안하면 5~6월 판매분부터 인상된 가격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판매 감소 우려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수출 단가 인상에 나선 것은 내부적인 원가절감 노력만으로는 환율 하락 여파를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출이 전체 판매의 3분의 2를 차지하고,부품 국산화율이 97%에 달하는 사업 구조상 환율 하락은 수익성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 현대·기아차의 연간 순이익이 7000억원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수출 단가 인상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지만 해외 판매 위축으로 이어질 우려도 적지 않다.


환율 부담이 없는 경쟁업체들이 대대적인 가격할인 공세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현대·기아차만 홀로 가격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도요타는 1만6200유로짜리 코롤라 해치백 모델을 지난달부터 1만5700유로로 낮췄고,오펠은 아스트라 디젤 모델 가격을 1만8550유로에서 1만5900유로로 무려 2650유로나 깎아주고 있다.


또 GM은 연초 미국시장에서 판매 중인 76개 모델 중 57개 차량의 평균가격을 1300달러 낮춘다고 발표했다.


피아트 등은 가격할인 대신 다양한 옵션을 무상 장착해주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브랜드 파워를 끌어올리고 고객 서비스 수준을 높여 가격 인상 파고를 헤쳐나간다는 구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생산 비중을 대폭 끌어올려 환율 영향을 원천적으로 막을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파워가 크게 향상된 데다 올해는 현대차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는 독일 월드컵이 열리는 만큼 3% 정도의 가격인상으로 인해 해외 판매 목표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