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인간이 동물에 비해 우월한 이유도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웃고 살기 위한 것인데,많은 사람들이 돈 버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지난 11일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그가 남긴 '웃음의 철학'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서울 자양동의 한 헬스사우나에서 목욕과 운동을 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김씨는 숨지기 전날인 10일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 '형곤생각'에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웃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하라'는 부제를 단 이 글에서 "웃음은 우리에게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면서 웃음을 잃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저녁 시간에 편성하는 방송사를 비판했다. 강도 사기 패륜 조폭 등의 어두운 내용을 다루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밤 10~12시에 편성해 국민들의 잠자리가 언제나 뒤숭숭하다는 얘기다. 김씨는 또 "밤 10시 넘어서는 정치인들 얼굴이 절대 방송에 안 나오게 해야 한다"며 "한밤에 텔레비전에 나온 정치인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가위 눌리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1980년 T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방송계에 데뷔한 김형곤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심형래 최양락 임하룡 등과 함께 1990년대까지 큰 인기를 누렸다. 시사풍자 코미디의 새 장을 열었던 그는 시사개그를 통해 뼈있는 웃음을 선보여 주목받았고 의미있는 웃음으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사오정''오륙도' 등의 사회현실을 풍자하면서도 "사람과 식품 모두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계발만 하면 유통기한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웠다. 김씨는 지난해 자신의 웃음 철학을 담은 에세이집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를 출간했으며,이달 30일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코미디쇼를 펼치기로 예정돼 있었다. 김씨의 영결식은 13일 오전 7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대한민국 희극인장으로 치러지며 시신은 가톨릭의대에 기증되고 유품 등은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치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