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양극화 해소, 시장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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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 한화그룹 고문 >
2006년에 들어서면서 양극화 문제가 정치, 경제의 화두가 되고 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구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역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를 어떻게 해결하려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경제계는 주름살만 더해 갈 뿐이다.
우리가 기껏 상상할 수 있는 양극화 해소란 돈 있는 계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시설의 증가 및 복지정책의 강화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장래 국민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단기적으로 서민층의 박수갈채를 받을 수도 있다.
최근 '왕의 남자'의 배우 이준기가 스크린 쿼터 축소반대 1인시위를 하니까 많은 젊은 청소년들이 "스크린 쿼터가 뭔지는 모르지만 이준기가 반대하니 나도 반대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해보니 과연 스크린쿼터 반대여론이 40%에서 60%까지 올라 갔더라는 것이다.
이 나라 정치가 포퓰리즘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필자가 30여년 전 대학원에서 경제 발전론을 공부할 때 '마할라노비스(Mahalanobis) 성장모형'이라는 논문을 읽고 감탄한 적이 있다.
마할라노비스 모형이란 경제를 생산재산업과 소비재산업으로 2분화하고 소비재산업에서의 자본생산성이 자본재산업에서의 생산성보다 더 크다고 하더라도 (소비재산업보다는) 자본재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면 일정기간이 지나면 소비재산업에 더 많이 투자를 하는 것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커진다는 것을 간단한 수학으로 증명해 놓은 것이다.
물론 마할라노비스는 여기서 개발초기 단계의 간단한 경제,즉 노동과잉과 공급부족의 경제를 가정하고 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정책을 시작할 무렵부터 70년대 초(소위 개발연대)까지는 우리도 바로 실업이 넘치는 노동 과잉국가였고 식량과 생필품(소비재)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였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없었으면 국민을 먹여 살리기도 어려웠던 시대였다.
이때 정부는 해외로부터 자본을 도입해 이땅에 고속도로를 깔고 석유화학 제철 조선 등 중화학공업에 집중 투자해 수출산업과 수입대체산업을 일으켜 세웠다.
한때는 중화학공업에의 과잉투자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한국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데 지금 정부 여당에서는 위와 같은 불균형 압축성장의 결과가 양극화의 단초가 된 것이며 불균형성장의 이론적배경을 제공한 사람들은 '서강학파'로서 이들의 논리는 이제 종언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서강학파들은 지금도 산업간 불균형성장을 통해서 소위 압축성장을 이룩해야 된다고 믿고 있는 경제학자들이란 말인가?
오히려 그들은 지금 고성장을 위해 자원의 최적배분을 달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오직 그들 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모든 경제학자들의 공통사상이 아닐까? 자원의 최적배분은 정부의 어느 부처, 어느 정책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기능에 의해서만이 효율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발달이 자본축적의 불균형을 초래해 시장실패가 생겨날 수는 있다.
정부의 기능은 이 같은 시장실패의 교정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로만 필요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장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기업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기업환경을 확립해주는 것이 또하나의 시장기능 창달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다.
시장기능 창달을 통해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야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어야 양극화도 점차 줄어드는 것이지 성장의 희생을 통한 복지정책의 강화는 양극화의 일시적 완화에 불과할 뿐이다.
즉 양극화 해소도 시장기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