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원 서강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올 여름 미국에서 장기간 체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칸마케팅협회 등 학회에 참석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실제 목적은 경영학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둔 한국인들을 직접 만나보거나 요즘 주목받는 박사과정 인력을 수소문하기 위해서다.

하 원장은 지난해에도 미국으로 직접 건너가 몇몇 박사학위 취득 예정자들에게 저녁도 사고 이메일을 보내 교수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교수 부족

최근 몇년간 '경영학 박사 품귀 현상'이 심화되면서 대학들이 애를 먹고 있다.

특히 16개 대학이 경영전문대학원(MBA) 설립에 나서면서 경영학 박사 부족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하 원장은 "경영학 박사 부족은 모든 경영대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라며 "외환위기 이후 해외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미국 등에서 한국인 학생을 많이 선발하지 않은 여파가 지금 밀려오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MBA과정을 운영중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함상문 교학처장은 "중국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미국 대학들이 중국 학생들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며 "그 여파로 한국 학생들에 대한 입학 허가는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해외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 오기를 꺼린다.

국내 대학이 줄 수 있는 연봉 수준이 미국 대학이나 기업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박종원 고려대 경영대 부학장은 "미국에서 교수가 되면 초임으로 10만~15만달러를 받는데 국내 대학들이 초임 교수에게 줄 수 있는 연봉은 고작 5만달러(5000만원) 내외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국립대(NUS) 경영학과에 재직중인 한 한국인 교수는 "연봉도 문제지만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생각하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멀어지는 '세계적 토종 MBA'

경쟁력 있는 교수를 구하기 어렵다보니 세계적 토종 MBA를 키워보겠다는 계획은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세계 톱클래스의 MBA 스쿨은 풍부한 재원과 우수한 교수진,뛰어난 학생 등 기본 조건 외에도 저마다 확실한 차별화 무기를 갖고 있다.

하버드대는 7000여 건의 방대한 기업 연구사례를 확보하고 있고 시카고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포진해 있다.

펜실베이니아대(와튼스쿨)는 '지옥훈련'이라 불리는 빡빡한 커리큘럼을 통해 언제라도 실전 투입이 가능한 경영전사를 양성한다.

국내 대학은 경영학 박사를 확보하는 것 자체도 어려울 뿐더러 확보한 교수도 영어 강의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일부 대학이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그 또한 '하늘의 별따기'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KDI MBA스쿨도 전체 교수 32명 중 외국인은 3명에 불과하다.

KDI는 지난해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금융분야를 전공한 외국인 경영학 박사를 채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함 처장은 "급여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생활 환경이나 자녀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도 올 2학기 교수채용에서 8명의 외국인 교수를 뽑으려 했으나 1명도 채용하지 못했다.

성균관대는 아예 지난 2004년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연계 과정을 개설하면서 외국인 교수 4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연봉은 현지 수준에 맞춰줘야 했다.

◆대학간 빈익빈 부익부

경영학 교수 부족은 계속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 뿐아니라 각종 경제 단체,기업들도 MBA스쿨이나 코스 개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시행령 등을 바꿔 임차시설도 교육시설로 인정해줌으로써 경제단체 등에도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다.

삼성 등 일부 기업과 전국경제인연합회 증권선물거래소 등이 관심을 갖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간 '스카우트전'도 치열하다.

서강대는 최근 이화여대에서 5년간 재직했던 마케팅분야의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또 일부 대학은 연봉 이외에 논문을 위한 연구지원금이나 해외 학술회의 참석 등의 경비를 보장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우수 교수 재원이 부족해지면서 스카우트 등으로 대학별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명문대의 경우는 지방대 등에서 데려와 문제가 크진 않지만 여건이 어려운 대학들은 대학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김동윤·문혜정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