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출둔화에 대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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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디플레이션이 오면 경제는 오그라든다.
역사적으로 디플레이션 가운데 성장을 지속했던 나라는 지난 100년 동안 하나도 없었다.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맞은 것은 1999년이었다.
1990년대 일본은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하고 이 지역과의 교역을 대폭 확대했다.
이는 비용절감을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지만,1997년 하반기 외환위기가 아시아 국가들을 휩쓸자 이 지역의 극심한 경기침체가 일본으로 직접 파급되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버블 붕괴 이래 만성적인 수요부족에 시달리던 일본경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성장률이 제1차 오일쇼크 이래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고 1999년부터는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일본경제가 안고 있던 수많은 구조적인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디플레이션 탈출은 다른 모든 정책과제보다 최우선적인 당면화제로 부각됐다.
일본 중앙은행도 콜금리를 한없이 제로에 접근시키는 '제로금리'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수는 없었으므로 2001년 3월부터는 본원통화 공급량을 억지로라도 늘려보려는 양적완화(量的緩和) 정책을 택한 것이다.
그러던 일본이 마침내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했다.
양적완화의 종료는 금리인상의 전단계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세계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은 디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낮게 유지해온 반면 미국은 재작년 하반기부터 금리를 빠르게 인상해 미ㆍ일 간 금리격차가 확대됐는데 이를 노리고 값싼 엔화자금을 빌려 달러화 자산을 매입하는 엔-케리트레이드가 만연했다.
그러다 보니 달러화 가치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이는 다시 역사상 최악인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더욱 확대시켜 왔다.
이처럼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세계적 불균형을 받쳐온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사라지고 조만간 일본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엔-케리트레이드를 위축시키면서 달러화 가치하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세계적 불균형 현상이 무한정 지속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시간이 갈수록 달러화 가치 하락압력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먼저 달러를 팔기 시작하면 무리이동 효과로 달러의 투매로 이어져 미국금리가 급등하고 세계경제는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에 못지않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 최악의 경제적 사건일 것이라는 경고다.
만약 그와 같은 세계적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수출비중이 사상 최대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우리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달러화 조정이 우리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처럼 달러화 조정이 세계적 경기침체 없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난 1~2년간 원화환율이 다른 지역의 환율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맞아야 할 매를 먼저 맞아 둔 것이다.
다른 나라 환율이 내려갈 때 원화환율이 동반해 내려가지 않도록 할 수만 있다면,1980년대 3저호황에 버금가는 호황이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일본의 양적확대 종료는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달러화 조정이 한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다.
달러화 조정이 시작되면 세계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세계적 경기침체로 수출이 둔화될 것을 대비해 내수부문의 경쟁력을 높여 놓아야 한다.
수출 기업들은 몇 년 사이에 환율이 달러당 900원이나 800원까지 내려가더라도 버틸 수 있는 체질을 갖춰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경제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