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가 '3·1절 골프' 파문이 불거진 지 2주 만에 결국 낙마했다. 나이 45세 때 늦깎이로 골프에 입문,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골프만은 양보 못 한다던 그가 골프로 인해 국정운영 2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 1년8개월여간의 재임 기간 유난히도 잦은 골프 구설수에 올랐던 이 총리는 고건 전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아 2004년 6월 참여정부 두번째 총리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이 총리는 재임 중 역대 어느 총리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실세 총리로 군림하면서 내각을 실질적으로 통할했다. 행정수도 건설작업과 방폐장 문제 해결 등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보여줬고,이라크 파병 등 각종 현안도 매끄럽게 처리했다. 하지만 직선적 성격과 말투는 야당과의 잦은 불화를 일으키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4년 10월 '차떼기'발언으로 2주일가량 국회를 공전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 5선 의원으로 세 차례의 정책위원회 의장과 교육부 장관 등을 거치며 여당의 대선 후보군의 반열에 올랐지만 골프 파문으로 그가 입을 정치적 타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