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램버스가 자사의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하이닉스반도체에 로열티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는 16일자 외신 보도에 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출렁거렸다.


종가 기준으로는 2.3% 하락에 그쳤지만 장중 한때 5% 이상 떨어지기도 했다.


특허소송이 6년째 진행 중이어서 크게 새삼스러울 게 없는 내용인데도 투자자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이닉스측도 당황했다.


김정수 하이닉스 IR·PR담당은 "외신의 보도내용은 2차 공판을 앞두고 램버스측 변호사의 주장을 전한 것일 뿐"이라며 "따지고 보면 소송은 우리가 먼저 제기한 것인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특허소송의 성격을 △로열티 취득을 위한 법적 호소 △특허료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엄포용 카드 △경쟁사의 연구개발 및 영업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전술 등으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성격들이 혼재돼 있고 의외의 속셈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고도의 두뇌게임


이 때문에 특허 전문가들은 일차적으로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상대가 돈을 원하는지,아니면 타협을 원하는지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응 방식 결정 역시 복잡한 변수들과의 싸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강경책과 유화책,속공과 지공을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허전쟁이 두뇌게임 양상을 보이는 것은 필연"이라고 말했다.


요즘 플래시메모리 특허기술을 놓고 하이닉스와 도시바가 벌이고 있는 쟁소는 퍼즐처럼 복잡한 심리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도시바는 플래시메모리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제쳐놓고 지난해 하이닉스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서는 특허료로 매출액의 몇 %를 달라는 협상을 물밑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 뒤에서는 플래시메모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샌디스크가 도시바-하이닉스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샌디스크는 특허 관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포식자로 삼성전자도 2002년에 로열티 제공 협상을 벌여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하이닉스는 도시바와의 1차전에서 밀리면 샌디스크와의 2차전에서도 불리할 것으로 보고 최대한 버티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하이닉스의 생각을 읽은 도시바는 다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서 소송에 매달리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


삼성SDI와 마쓰시타가 PDP 모듈 분야의 특허를 놓고 맞제소를 벌이고 있는 것도 복잡한 상황의 산물이다.


PDP TV 분야의 세계 1위 업체인 마쓰시타는 2004년 경쟁사인 LG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지난해 5월 크로스 라이선스로 분쟁을 마무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말 삼성SDI가 돌연 마쓰시타에 소송을 걸고 나왔다.


마쓰시타의 특허료 지급 요구를 선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마쓰시타는 맞소송으로 즉각 반격에 나섰지만 물밑에서는 LG전자와 그랬던 것처럼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을 위한 접촉을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업계의 특허소송은 실제로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것인지,아니면 경쟁업체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대화와 타협,평화와 정전 협상 형태로 결론지어진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