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과 강북 지역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률 차이가 최대 9배나 된다고 합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비정한사회 따뜻한사회’사이트에 나온 기획기사인데, 서울 강남구는 인문계고 졸업생 1000명당 25.4명, 서초구는 1000명당 23.5명이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마포구는 1000명당 2.8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청와대가 2005년 서울대 합격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다고 하니까 맞는 숫자겠지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것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갑자기 논리비약을 하면서 이상한 결론을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종 데이터를 늘어놓은 뒤 ‘대학 입시 출발점 소득에 따라 큰 차이나’라는 소제목을 달고 장황한 글을 써놓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득격차가 교육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합니다. 부자들의 자녀가 더 많은 교육기회를 갖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맞는 애기이긴 하지만, 소득격차가 교육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은 논리의 ABC도 모르는 엉터리입니다. “강남과 강북의 소득격차가 교육불평등을 예전보다 훨씬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과연 그럴까요? 하나하나 따져봅시다. 우리는 어떤 사안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때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지요. 한가지 예를 들자면 뉴욕의 경찰관수과 범죄발생빈도의 관련성입니다. 미국 뉴욕에는 범죄가 많아서 경찰관들이 많은 것일까요, 아니면 경찰관들이 많은 곳(뉴욕)에는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전자입니다. 범죄가 많기 때문에 경찰관들이 많아진 것이지, 경찰관이 많아서 범죄가 많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원인과 결과를 혼동할 경우 “경찰관을 줄이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황당한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률이 높은 것은 ‘빈부격차’때문일까요, 아니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학입시 이전(중,고등학교 때)에 강남구나 서초구 등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일까요. 청와대 사이트인 ‘비정한사회 따뜻한사회’는 원인에 대한 차분하고 세심한 분석도 없이 1백미터 경주에서의 출발점 차이를 들먹이며 다짜고짜 “소득에 따라 (서울대 입학률에)큰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논리적 사고의 기초는 반증입니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반증의 논리를 제시해봅시다. 강남구와 서초구에 고교생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들은 모두 부자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값이 비싸다는 아파트들도 많지만 다세대 다가구 주택,원룸 등 다양한 집들이 있습니다. 매매가격이 높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조차 전세 또는 월세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강북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자녀교육을 위해 강남 서초 등지로 이사왔거나,아니면 집이 없는 무주택자가 자녀교육을 위해 전세를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어제(16일) 주변의 한 사람은 “전라도 목포에서 이발소 운영하는 사람이 조그만 빌딩 꼭대기 8평짜리 원룸에서 두자녀를 공부시키면서 주말마다 올라온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결론을 냅시다. 강남과 서초의 서울대 입학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것은 “서울대에 들어간 강남 서초 지역 학생들의 부모가 부자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낼 만한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강남지역의 높은 서울대 입학률이 ‘빈부격차가 교육양극화를 초래했다’고 결론내리는데 어떠한 단서나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설마 청와대가 강남 서초 지역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거나 다가구 다세대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을 부자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아니겠지요? 실제로 강남출신 서울대 신입생들을 조사해보면 전세주거 비율이 결코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반증입니다. 강남과 강북의 서울대 합격률이 최대 9대1의 격차를 보인다는 예시를 통해 ‘부자의 자녀들이 서울대에 들어갈 확률은 가난한 사람의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가 확률보다 9배정도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9배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부자 자녀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강남구와 마포구를 비교할 게 아니라, 강남구 내에서 부자집 자녀와 가난한집 자녀의 격차를 비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요인(빈부격차)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인들에서 생길 수 있는 차이를 제거(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조건들을 똑같게 만드는 환경에서 특정 요인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연구방법이지요.(청와대 비서관들은 아마도 이처럼 기초적인 사안을 모르는 것인지,아니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강남구에 있는 특정 아파트 단지에서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 집의 자녀와 전세살고 있는 집, 연립주택에 살고있는 학생들의 학력을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자가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 즉 상대적으로 부자들 자녀의 학력이 전세살고 있는 자녀의 학력보다 높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강남지역에 사는 고교생이라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생각해보세요. 과연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녀가 오히려 공부를 더 잘 할 가능성이 꽤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강남에서 전세까지 살면서 자녀교육을 시키는 사람은 ‘부모의 자녀교육열이 매우 높거나’ 아니면 ‘자녀의 학업자질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강남과 서초의 서울대 입학률이 높은 것은 ‘빈부격차’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빈부격차가 학업능력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더 큰 원인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대입 이전에 강남과 서초 등으로 이사를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만 해도 10여명 정도가 자녀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들의 자녀는 거의 모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었고,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겠다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강남행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냅시다. 강남에서 서울대 합격률이 높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강남과 서초 등으로 몰려들고 있는 현상이 더 큰 문제입니다. 즉 강남의 높은 서울대 합격률은 결과일 뿐 중고등학교 때부터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강남으로 모이는 것이 바로 원인입니다.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강남 열풍은 집값까지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공부잘하는 학생이나 교육열이 높은 부모는 강남으로 몰려들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교육평준화 때문입니다. 학업능력에 따라 고교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학군별)로 학생들을 뽑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사람,공부 잘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우수한 지역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좋은 곳에 부자들이 많이 살거나, 부자들이 새로 몰려오게 됩니다. 부자들이 모여사는 곳에 있는 학교가 아무래도 시설이나 교육환경 면에서 나을 것이고, 조금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는 맹모(맹자의 어머니)들이 강남 지역 등으로 몰려들면서 지역간 교육 격차(여기서는 서울대가 아니라 고등학교를 말하는 것입니다)는 급속히 확대된 것입니다. 서울대 입학률 격차가 아니라 고등학교의 지역간 격차가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서울대 입학률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정부는 고교간 학력격차는 극력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자들이 자녀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부자 자녀들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격차는 청와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리 큰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가난한 집안의 자녀라 하더라도 공부 만큼은 부자 자녀들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만드는 고교생 경제교육신문 ‘생글생글’에서는 고교생 기자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지난 2월 고교 졸업생이 9명이었는데 이중 3명이 서울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했습니다. 이들 세명은 대구광역시와 경기 구리시,제주도 제주시 출신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들의 집안이 특별한 부자도 아니고, 유별난 과외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빈부격차는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 격차를 줄여가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표가 좋다고 하더라도 논리의 비약, 원인과 결과의 혼동 등 엉터리 논법을 제시하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참고로 최근 발간된 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브너 공저)의 한 부분(229페이지)을 인용해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미국의 각종 데이터들을 수집해 조사한 결과인데, 학교성적과 관계 없는 항목중 하나로 ‘최근에 주변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는 것을 꼽은 것은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hyunsy@hankyung.com *학교성적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가 30세 이상이었다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가 적었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쓴다(비영어권 이민자와의 비교) -입양된 아이다 -부모가 PTA(Parent-Teacher Association,사친회)활동을 한다 -집에 책이 많다 *학교성적과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가족 구성이 온전하다 -최근에 주변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아이가 헤드스타트를 다녔다 -부모가 아이를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간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한다 -아이가 TV를 많이 본다 -부모가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