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패배로 떨어지다니…. 다음 대회에는 우승이다. 대한의 건아들 아쉽지만 잘 싸웠다" 최근 2주간 온 국민을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145g의 백구(白球)가 이번에는 우리를 외면했음에도 시민들은 4강 진출 그 자체에 만족하며 끝까지 열심히 싸워준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19일 낮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 한일전에서 6연승의 파죽지세로 4강에 오른 한국팀이 구사일생한 일본에 0대 6으로 석패하자 시민들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숨을 죽여가며 경기 모습을 관전하던 시민들은 7회 초 투수 김병현이 일본 대타 후쿠도메로부터 맞은 장타가 쭉쭉 뻗자 `설마' 하는 마음으로 타구의 끝을 주시하다 2점 홈런으로 확인되자 "이럴수가" 하며 외마디 탄식을 질렀다. 그런데도 시민 응원단은 한국이 보여준 그간의 저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순식간에 무려 5점을 내주자 경기결과를 비관하는 기색이 얼굴에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규모 응원전이 펼쳐진 시청 앞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잠실야구장 등에서는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뒤인 8회 초 비로 경기가 한동안 중단되자 응원대열에서 이탈하는 시민들이 늘어났으나 대다수는 끝까지 남아서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2년 월드컵의 성지'인 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야구팬 1만여명이 모여 파란색 방망이를 두드리며 무대 정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울 월드컵 역전 드라마가 재연되기를 기도했다. 시민들은 `그날의 감동'을 기대하며 응원에 몰두했으나 7회 초 일본이 5점을 내면서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지자 긴장된 얼굴이 더욱 굳은 표정으로 변했으며 곳곳에서 한숨 소리도 들렸다. 서울광장에 나온 박지훈(32)씨는 "처음에는 손에 땀을 쥐고 재미있게 봤는데 대량 실점하는 것을 보니 너무 아쉽다"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시민들과 함께 응원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오늘 져서 아쉽지만 일본에 2승 1패 했으니까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하게 싸웠다고 본다. 야구에서 4강까지 간 것이 월드컵 4강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좋은 징조인 것 같다"고 격려했다. 권문용 강남구청장도 "아쉽지만 최선을 다한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 박수와 함께 격려를 보내고 싶다"며 "이들을 보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야구장에도 2만명의 시민이 오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했다. 야구 대표팀 유니폼을 본 뜬 `KOREA'라는 문구가 적힌 하늘색 T셔츠도 경기 시작 전부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관중은 멀티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국팀의 그림 같은 수비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광했지만 7회 초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뒤에는 많은 시민이 아쉬움 속에 발길을 돌렸다.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본 장정선(23.여)씨는 "솔직히 너무 큰 점수차가 나서 희망은 없지만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서울역ㆍ용산역 대합실과 강남 고속터미널 등에서는 승객 수백명이 TV세트 앞에 모여서 결승진출을 기도하며 경기를 관전했다. `0'의 행진이 계속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대합실에는 패색이 짙자 승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일부러 용산역에 나왔다는 대학원생 이광준(25)씨는 "실투에 이은 집중력 저하가 패인인 것 같다. 첫 패배로 결승 진출이 좌절돼 무척이나 아쉽다"고 말했다. 노상열(58)씨는 "잘 싸웠는데 7회에 5점을 내주면서 갑자기 무너져 너무 안타깝지만 4강 진출만으로도 잘 했으니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한국팀에 2번이나 졌던 일본이 한번 이기고 결승에 오르게 돼 솔직히 약이 오른다"는 반응도 보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의 결승 진출을 자축하면서도 우리의 하나 된 응원 모습을 부러워했다. 용산역에 나온 한 일본인(24.여)은 두 번이나 한국에 져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데 큰 경기에서 한국을 누르고 결승에 올라가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유학생 오가타 요시히로(29)씨는 "일본이 이기고 결승에 올라가 기분이 좋지만 한국팀에 2번 지고 올라가 솔직히 개운하진 않다"며 "한국이 야구를 축제로 즐기는 것이 부러웠고 열정적인 응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극장가와 백화점, 쇼핑몰 등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고 시내 곳곳도 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 등 응원 장소를 제외하고는 한산했다. 지방에서도 응원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야구장을 무료로 개방하며 축구경기가 있는 축구경기장에서도 전광판을 통해 한-일 준결승전을 중계했다.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울산, 강릉, 마산 등 대도시의 월드컵 경기장과 체육공원, 중앙공원 등에 몰린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지만 패배로 응원의 빛이 바랬다. 한편 경기가 점심 시간과 겹치면서 일부 중국음식점에는 주문이 평소보다 3배가 몰리는 등 음식배달 업체가 때 아닌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