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강소국 덴마크가 '해고도 쉽지만 재고용도 쉽게 하는' 노동정책으로 실업률을 5% 미만으로 유지,뒤늦게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최초고용계약(CPE·26세 미만 근로자 2년 내 자유 해고)을 도입하려다 혼란을 겪고 있는 프랑스에 귀감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이 22일 보도했다. ◆'해고가 두렵지 않다' 덴마크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수잔 올센.고등학교 졸업 후 10년간 도축장에서 일하던 그는 작년 5월 500명의 동료와 함께 해고됐다. 도축장을 운영하는 정육회사 '대니쉬크라운'이 인건비가 저렴한 동유럽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자 감원을 결정한 것. 그러나 올센은 걱정이 없다. 지금 골프장에서 조경사 일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급여의 일부를 보조해주는 데다 수습기간 중 들어가는 비용도 정부와 새로운 고용주가 분담한다. 올센은 "옛 동료들이 그리울 뿐,옛 직장이 아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올센과 같이 해고된 동료들 중 이미 380명이 새 직장을 찾았고 일부는 재고용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아직까지 실업수당을 받고 있는 동료는 60명뿐이다. ◆자유해고와 조건부 실업수당의 조합 덴마크는 '대니쉬크라운'의 경우처럼 기업의 자유로운 해고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덴마크 국민들은 일자리에 대한 불안이 거의 없다. 높은 실업수당과 적절한 재고용 프로그램 덕분이다. 덴마크 정부는 근로자가 해고될 경우 직전 급여의 90%가량을 실업수당으로 지급한다. 실업수당이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고 온정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1년 안에 직장을 못 구하면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제안하는 직업훈련 등을 받아야 하며 이를 거부하면 실업수당이 줄어든다. 덴마크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실업수당을 이처럼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미국식 자유해고제와 북유럽식 복지 정책을 결합,노동시장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잡는 방법인 셈이다. 최근 유럽 각국이 경쟁력 향상 명목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에만 초점을 맞추다 거센 저항에 부닥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덴마크식 모델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1990년대 초 10% 이상이던 덴마크의 실업률은 현재 5% 미만으로 유럽 평균(약 9%)보다 훨씬 낮다.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3.4%로 양호했다. ◆덴마크 배우기 바람 덴마크 모델이 성공적인 것으로 비쳐지면서 유럽 각국들도 '덴마크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에 덴마크를 바람직한 모델로 권고했고 유럽의 정치인들도 코펜하겐(덴마크 수도)에 몰려들고 있다. 뒤늦게 최초고용계약을 밀어붙이다 대규모 노학연대 시위에 직면한 프랑스도 덴마크 모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