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혁한 무공을 세우거나 문화적인 공적이 탁월한 사람에게 주는 '레종 도뇌르'는 프랑스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으로 꼽힌다. 나폴레옹 1세가 1802년 이 훈장을 제정했으니 그 역사만도 200년이 넘었다. 당시 국민공회는 훈장수여가 평등사상에 위배된다 해서 여러 해 논란을 벌였으나,나폴레옹은 개인에게 영예를 줄 경우 국가에 더욱 헌신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훈장제정을 관철시켰다. 로마시대에도 운동경기 우승자나 군인,시인들에게 표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국가에의 충성과 개인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 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훈장의 개념은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종교기사단의 표장이 시초라고 하는데,훈장과 종교기사단을 동시에 뜻하는 영어의 '오더(order)'를 그 증거로 댄다. 우리나라에서는 1900년 훈장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래,1963년에 제정된 '상훈법'에 따라 각종 훈·포장이 수여되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독립운동,한국전쟁,민주화 운동 등 수많은 역사의 격랑기를 헤쳐 왔기에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아 훈·포장을 받은 인사들이 많다. 그런데 '명예의 상징'이랄 수 있는 훈장이 박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12·12 군사반란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관련자,비리 경제인 등 176명의 서훈과 훈장이 모두 취소된 것이다. 과거사를 재해석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단행된 일이라고 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훈장을 자진 반납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문제되면서 한 영화배우가 문화훈장을 반납하는가 하면,화재로 아이를 잃은 엄마는 사회부조리를 비난하며 자신이 운동선수 시절에 받은 체육훈장을 내놓고 이민을 떠났다. 국군포로의 강제북송에 항의하며 화랑훈장을 반납하는 일도 있었다. 가장 자랑스럽게 간직해야 할 훈장을 박탈당하고 자진 반납하는 현실은 분명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자칫 훈장의 의미가 퇴색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