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인디언들은 음악적 재능이 풍부합니다. 손재주도 섬세해 로마에서 연주되는 바이올린 중엔 그들이 만든 것이 많습니다. 예수교 신부들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오히려 순교를 당하게 됐습니다."


롤랑 조페의 1986년 영화 '미션'에서 남미로 파견된 추기경은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현지 원주민 과라니 족을 이렇게 묘사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1750년 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 지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기록이다.


영화 속에서 스페인 예수교 선교사들과 과라니 족은 포르투갈 점령군에 맞서 싸우다 전멸했다.


'전사'라는 뜻의 과라니 족은 실제로도 포르투갈 노예상에 맞서 취관(입으로 불어 화살을 쏘는 무기)과 화살만 들고 7년간 처절하게 싸웠다.


하지만 영화와 사실의 차이는 이들이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된 후 도처로 흩어져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특히 저항 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파라과이에서 확실한 혈족을 남겼다. 스페인과 과라니 족의 혼혈인 메스티소는 이 나라 인구의 95%를 이룬다.


서대문구 봉원동 관저에서 주한 파라과이 대사 부인 실비아 리켈메 곤잘레스를 처음 만났다.


심연같이 탁한 잿빛 눈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흰 피부색의 그녀는 고기 파이가 담긴 바구니를 든 채 혼혈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파라과이는 1811년 독립 후에도 독재자의 등장과 쿠데타,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반복하면서 정신 없는 혼란을 겪었고 한때는 인구가 거의 몰살당할 뻔했다.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겨우 숨 돌릴 만해진 것이 고작 10여년 전이다.


"우리는 메스티소들입니다. 원주민 과라니 족과 백인의 혼혈이죠. 언어도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곤잘레스 여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밝히며 "순수 백인이나 토종 과라니 족은 인구의 도합 4%를 넘지 않고 나머지는 일본 한국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라고 설명했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과라니 족이 그랬듯 자생 식물 만디오카 뿌리와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다.


파라과이산 먹거리로 또 유명한 게 쇠고기다.


파라과이 쇠고기는 육질과 맛이 뛰어나 유럽과 북미로 수출된다.


곤잘레스 여사는 "파라과이에선 집집마다 큰 그릴을 갖추고 한 주에 한 번쯤 온 가족이 모여 파라과이식 바비큐인 아사도스를 해 먹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파라과이인들의 주식인 옥수수를 활용한 두 가지 요리를 소개했다.


옥수수로 도우를 만드는 고기파이 '엠파나다 데 카르네'와 옥수수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 '보리보리 치킨 수프'다.


엠파나다 데 카르네는 고기와 야채로 속을 채운 후 만두처럼 봉합해 오븐에 굽는다.


쇠고기 만두소와 고소한 옥수수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환상의 궁합이었다.


보리보리는 옥수수 새알심을 부르는 말이다.


옥수수 가루와 파머산 치즈가루를 섞어 만든다.


닭기름 속 치즈 가루가 약간 느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미주 지역에서 치킨 수프는 감기 예방과 치료를 위한 민간 처방으로도 쓰인다.


과라니 족은 용감한 전사이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음감이 뛰어나고 풍류를 알고 있다.


파라과이의 혼혈 후손들은 과라니 족의 전통을 이어받아 여름에는 차게 마시는 테레레 차를,겨울에는 뜨거운 마테 차를 즐긴다.


곤잘레스 여사는 "파라과이에 가면 테레레나 마테를 마시면서 하루종일 친구들과 잡담하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마테를 마실 땐 전통 찻잔에 제르바 마테 찻잎을 찻잔의 3분의 2 높이까지 잘 개어 넣은 후 빨대 '봄비자'를 꽂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여러 명이 찻잔 하나를 놓고 함께 마시기도 한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한없이 잡담이 이어진다.


외지인들은 남미인들의 여유,또는 시간 개념 부족이 이 마테 문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파라과이의 일부 기업들은 '근무시간 중 마테 금지'를 표어로 붙여 놓곤 한다.


www.hankyung.com/community/ked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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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보리 치킨 수프 만들기 ]


○재료=닭 한 마리,옥수수 기름 4분의 1컵,피망 토마토 양파 1개씩,소금,오레가노,뜨거운 물 4컵(닭은 다리 가슴 날개 등으로 먹기 좋게 나누고 야채는 잘게 썬다). #보리보리=옥수수 가루 2컵,파머산 치즈 가루 100g.


○만들기=①닭을 옥수수 기름에 볶다가 야채를 넣어 함께 볶는다.


②큰 냄비에 볶은 야채와 닭고기를 넣고 물을 부은 후 소금과 오레가노를 뿌린다.


부드러워질 때까지 40분간 끓인다.


③보리보리를 만든다.


치즈와 옥수수 가루를 섞은 후 끓고 있는 치킨 수프를 약간 넣어 포도알 크기로 뭉친다.


④마지막에 보리보리를 넣고 5분 더 끓인다.


불을 끄고 옥수수 가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