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본사와 물류 및 전장(전기장치)부품 계열사인 글로비스,현대오토넷 등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지자 현대차그룹은 물론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재록씨가 DJ 정부 시절 금융계의 마당발로 불리며 기업구조조정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검찰 수사가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검찰 수사가 다른 기업은 물론 정·관계로 번지며 장기화될 경우 경영위축과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날 압수수색은 현대·기아차가 글로비스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 중 수십억원이 김씨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에 대한 관련 증거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공식 발표다. 검찰은 현대·기아차가 건설 인·허가를 얻기 위해 로비자금을 건넨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나섰을 뿐 기아차 인수과정이나 후계구도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도 "다른 기업과 달리 경영권 승계작업이 이뤄지지도 않았고 이와 관련해 불법이나 편법 행위를 저지른 일도 없기 때문에 후계구도와 관련해 수사대상에 오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수사 타깃이 어디에 있든 재계에서는 수사가 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길어질 경우 가뜩이나 악화된 경영여건 속에서 힘들어하는 국내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크게 제약할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이나 민영화된 공기업을 인수한 기업들은 김재록 파문의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튀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하락과 유가급등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돼 현대차를 비롯한 상당수 기업들이 비상관리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며 수사 장기화에 따른 파장을 걱정했다. 그는 "가뜩이나 비정규직 입법화 문제로 민주노총이 4월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노사 관계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며 "검찰 수사로 기업들이 본연의 경영활동보다는 골치 아픈 일에 매달려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권도 '김재록 파문'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하고 있다. 김씨가 전·현직 금융계 CEO(최고경영자)를 비롯 상당수 금융계 고위 인사와 친분을 맺고 있는 데다 일부 금융회사들의 대출 등에도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씨가 외환은행 M&A(인수·합병)에도 관여했다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금융계 고위 인사가 직·간접적으로 조사를 받고 금융감독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로 불씨가 번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