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비자금 수사로 '경영 공백' 상태에 빠진 현대차그룹에 이번엔 노조의 압박이 새로운 부담으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회사의 바람(임금 동결)과는 거리가 먼 9%의 임금 인상을 요구할 태세인데다 비정규직 처리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총파업마저 계획하고 있어서다.


환율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비상경영'까지 선언한 현대·기아차로서는 이 같은 노조의 움직임이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검찰 수사로 회사측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에 따라 올해 현대·기아차의 임금 및 단체협상은 어느 때보다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자칫 노조가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 파업이란 극한 수단을 사용할 경우 가뜩이나 경영위기로 신음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조,압박 수위 높일 듯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노조는 이번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회사측의 임금동결 요구에 정면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노조는 "환율하락으로 인해 비상경영에 돌입할 정도로 경영이 어렵다"는 회사측의 임금동결 논리에 대응할 만한 마땅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


현대차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70원 떨어지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7980억원과 5529억원씩 줄어들 정도로 타격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들의 연평균 임금이 5800만원에 달하는 만큼 동결할 때도 됐다"는 회사측 압박에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경영 공백이 가시화되자 노조가 공세에 나설 움직임이다.


실제 지난 27일부터 2006년 임단협 요구사안 심의에 들어간 현대·기아차 노조는 다음 주 중 9%대 임금 인상을 골자로 한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노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본급을 올리지 않아도 근속연수에 따라 매년 임금이 인상되는 호봉제를 도입하자'거나 '생산직뿐 아니라 일반직과 연구직의 근로시간도 하루 8시간으로 줄이라'는 요구마저 꺼내들고 있다.


심지어 경영권에 속하는 해외공장 건설이나 공장 간 생산물량 조정에도 '고용안정'을 명분으로 참여하겠다고 회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특히 다음 달 6일께 국회에서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될 경우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총파업에 가담하겠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경영위기 장기화되나


현대·기아차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가 환율하락으로 신음하는 동안 도요타 등 일본의 경쟁업체는 엔화약세에 힘입어 가격인하 공세를 벌이고 있는 만큼 한 푼의 원가절감이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찰 수사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노조의 요구에 회사측이 휘둘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9일 채양기 기획총괄본부 사장에 이어 30일 이정대 재경본부장마저 검찰에 소환되자 현대·기아차의 각종 현안 조정작업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현장경영을 통해 각종 현안을 진두지휘해 온 정몽구 회장마저 칩거에 들어가자 재계 일각에선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신·증설과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 건립 등 핵심 사업이 지연되거나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영여건 악화와 검찰 수사로 회사가 난국에 처한 마당에 노조마저 이를 빌미로 공세를 취하고 있어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라며 "노조가 회사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무리수를 둘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