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의 일이다. 서울 강북에 살던 50대 중반의 A씨는 30년 가까이 정들었던 아파트를 팔고 강남으로 이사갔다.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큰 딸이 "시집을 잘 가려면 강남에서 살아야 한다"며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다. 작년 7월 일산에 살던 30대 후반의 한 금융회사 직원 B씨는 7억원짜리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두 채 샀다. 노후대책을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B씨는 아파트를 판 돈 4억원과 회사에서 무이자로 대출을 받은 1억원에다 주택담보대출을 얹어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 그는 지금 전세에 살지만,아파트값이 11억원으로 올라 성과는 톡톡히 거둔 셈이 됐다. 또 얼마전에는 한 독자가 이색적인 이메일을 보내왔다. "수년 동안 몇 번이나 집을 옮겨 다닌 끝에 드디어 강남에 입성했다"며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보통사람들의 '강남가는 길'에는 각기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정부는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8·31 대책 후속으로 '3·30 대책'을 발표했다. 집값 상승의 진원인 재건축 사업을 사실상 봉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필요하면 4차,5차 대책도 내놓겠다고 한다. 문제는 부동산시장이 정부 기대와는 딴판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규제가 나올 때마다 집값은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듯하다가 이내 되오른다. 이번에도 강남 재건축 집값은 당장은 소폭 내리고 있지만,시장 저변에는 "기다리면 규제가 풀리고 기회가 온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정부가 누르면 누를수록 규제완화 기대도 비례해서 커지는 양상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는 부동산시장의 수급 불균형에 원인이 있다. 특히 강남권에서는 정부 규제는 곧 주택이 더 늘어나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로 통해 오히려 주택의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경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세금을 올려도 마찬가지다. 인상액만큼 파는 사람은 가격을 올리고 이 가격도 좋다며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줄서 있는 것이 지금의 시장이다. 강남행(行) 수요가 복합적인 데 비해 정부 대책과 처방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강남 수요는 정부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일부 투기세력 말고도 자녀결혼을 고심하는 A씨 예에서 보듯 다양하다. 투기세력이라도 노후대책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사는 B씨 같은 중산층도 있다. 일류대학에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와 학원을 택해 전세를 살더라도 강남에 가겠다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투기세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강남찬가'를 부를 생각도 물론 없다. 다만 강남행 수요가 이렇듯 다양하다면,정부가 오로지 집값만을 겨냥한 단발성 대책을 찔끔찔금 내놓을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목말라하는 것들을 굳이 강남에 안가도 충족할 수 있게 종합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바뀌고 달라지는 시장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정부 대책이 공연히 봉급생활자들의 내집마련 꿈만 깨뜨리는 우(愚)를 범할까 우려되기에 하는 말이다. 문희수 건설부동산부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