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겠다는 '반(反)이민법' 반대 운동의 주역은 단연 중남미 출신들이다. 불법 체류자 10명 중 중남미 출신은 8명꼴이다. 시위 현장은 온통 중남미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남미 출신 합법 체류자들도 '아미고(친구)'를 위해 시위대열에 가담했다. 중남미 출신 불법 체류자를 겨냥한 '반(反)이민법'은 역설적으로 미국 내 중남미 이민자들을 하나로 묶고,그들의 파워를 한껏 과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5분의 4가 중남미 출신 멕시코 출신인 라몬 산체스(22)는 뉴저지주의 조그만 가드닝(Gardening·정원관리) 회사에서 일한다. 집이나 도로의 잔디를 깎고 관리하는 게 그의 일이다. 말이 가드닝이지 막일이다.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않는다. 뉴멕시코주의 엘파소 근처 국경을 가슴졸이며 넘어온 게 1년 전이다. 국경순찰대에 잡힌 친구나 뚜렷한 일자리 없이 막노동판을 기웃거리는 친구도 여럿이다. 산체스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백명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불법 체류자 중 멕시코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620만명으로 전체 불법 체류자 1110만명(2005년 3월 말 현재)의 절반을 넘는다. 다른 나라까지 합치면 78%인 870만명이 중남미 출신이다. ◆하부구조는 중남미가 장악 미국의 웬만한 도시를 가면 산체스 같은 중남미 출신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집 짓는 공사 현장 인부의 절반가량은 중남미 출신 히스패닉이다. 도로공사 잔디관리 설겆이 청소 주차대행 등도 대부분 이들의 몫이다. 서부지역의 농장일도 이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허드렛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히스패닉이 있다. 2005년 3월 말 현재 미국 전체 근로자는 1억4860만명에 달한다. 이 중 불법 체류자는 725만명으로 4.9%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서비스업(31%)이나 건설(19%),각종 수리(15%) 및 운송 관련 업종(8%)에서 일한다. ◆'중남미는 하나다' 지난 25일 열린 반이민법 반대를 위한 로스앤젤레스(LA) 시위의 주최측은 당초 2만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무려 50여만명이 몰려들었다. 합법 이민자들도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미국사회에 불만이 있던 차에 멕시코 국경 320km에 장벽을 세우는 등의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소식에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출신 국가에 따라,체류 신분에 따라 존재하던 경계도 무너져 내렸다. '라틴은 하나'라는 동질성을 확인한 이들은 자신들의 파워에 스스로 놀라는 표정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원 법사위는 불법 체류자에게 우호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공화당 의원들은 사분오열 찢어졌다. 중남미 출신이 많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당락을 좌우할 집단으로 떠올랐다. 중남미 출신은 이미 흑인 인구를 추월했다. 2050년이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현재 전체의 3분의 2인 백인은 절반 아래로 줄어든다. 이를 우려해 시도한 반이민법이 히스패닉의 단결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