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어느날 한 할아버지가 격앙된 음성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왔다. 손녀딸이 수없이 맞선을 보았는데 맞선 본 총각마다 처음에는 호감을 보이다가 막상 혼담이 무르익으면 끝에 가서 퇴짜를 놓더라고 하소연하면서 이런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거래거절'로 조치를 취해야 할 사항 아니냐고 따졌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입안작업을 실무적으로 주도했고,공정위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위원장까지 지낸 전윤철 감사원장의 회고담이다. 위원장 재직 시절 펴낸 책 '경쟁이 꽃피는 시장경제'에 실려있다. 그만큼 공정거래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컸다. 올 4월1일로 창립 25주년을 맞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연 그러한 국민들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했는가. "시장경제의 파수꾼이자 수호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게 자평(自評)이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솔직히 공정거래법이 무슨 법인지 아느냐고 일반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웬만한 경제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재벌 규제법 아니냐"고 답할 가능성이 크다. 요사이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비롯해 소위 경제력집중을 완화한다는 명목의 각종 기업규제들이 공정거래법의 현안으로 대두돼 왔기 때문이다. 경쟁촉진을 위한 시장경제의 파수꾼을 자처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업의 투자나 조직까지를 법으로 제한하는 경쟁억제조항을 담고 있으니 이율배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공정거래법의 정식 명칭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고도성장 과정에서 독과점의 폐해가 대두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 공정거래법의 제정이었다. 1964년에 시작돼 2∼3년에 한번씩 법시안이 만들어졌으나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다 공정거래법이 만들어진 것은 10ㆍ26사태 이후 국회가 해산되고 그 기능을 대신하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였다. 정치적으로는 가장 비민주적이라 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경제적 민주화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법안이 80년 12월에 만들어져 이듬해 4월부터 시행됐다. 정상적인 국회였다면 그 때에도 입법 자체가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쨌든 공정위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물론 당시의 법안내용은 공정법 본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독과점 규제와 불공정거래행위 방지 등이 핵심이었다. 그러던 것이 86년 1차개정 때 이른바 경제력집중 완화를 법목적에 추가하면서 지금의 재벌규제 조항이 독과점규제라는 본래의 목적을 밀어내고 공정법의 안방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공정거래법을 '경제헌법'이라고 부른다. 시장경제원리를 구현하는 기본법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을 운용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 또한 그에 걸맞아야 한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특정기업이나 특정 산업을 규제하는 그러한 법 운용이 이뤄진다면 위상에 걸맞은 명성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지난 25년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때마침 제13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새로 취임한 권오승 위원장은 "우리 공정거래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선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경쟁질서를 존중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준수하는 경쟁문화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집단시책의 개편도 거론했다. 뒤늦게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다. 권 위원장의 지적대로 세계는 지금 글로벌화 블록화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경쟁정책도 새롭게 단장돼야 하는 이유다. 공정위가 '재벌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는 고리타분한 주장만 되풀이 하는 것은 공정위의 위상을 스스로 비하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