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편집상 등 주요부문상 3개를 석권한 '크래쉬'(감독 폴 해기시)는 다인종이 공존하는 '멜팅폿'이란 미국사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영화다.


백인과 흑인,라틴계 미국인과 이란인,한국인 등 등장인물들은 삶의 방식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한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타인종에 대한 편견이다. 편견은 인종차별을 낳아 서로에게 가해하고 상처를 받는다. '크래쉬'는 이처럼 뿌리 깊은 미국의 치부를 정면으로 해부하면서 인종 간 화해와 공존을 촉구한다.


LA 교외의 한 도로에서 시체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현장에 도착한 수사관의 얼굴이 당혹과 슬픔으로 일그러지면서 이야기는 36시간 전 여덟 커플의 삶으로 돌아간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여덟 커플을 연결짓는 고리는 삶의 우연성이다. 백인 여자는 아시아계 가정부를 구박하다가 갑자기 가정부를 소중한 사람으로 아끼게 된다. 그녀가 사고를 당했을 때 가정부의 도움을 받은 까닭이다. 이런 식의 우연성은 다른 인물에게도 그대로 반영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닥치고,변화무쌍한 감정 상태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거나 선행을 베푼다.


다인종이 모여사는 미국 사회에서 삶의 우연성은 상당 부분 인종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이 영화는 주장한다. 한 이란인이 아랍인으로 오인되는 에피소드에서 이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아랍인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됐지만 이란인은 사실 아랍계와는 다른 페르시아인이다. 아랍인으로 오해받은 이란인은 또한 착실한 흑인 열쇠수리공을 도둑으로 착각한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인종차별과 편견의 허상을 보여준다.


타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이 동일 인종 내에서도 갈등과 불화를 야기하는 상황은 인상적이다. 백인 경관에게 성추행 당한 흑인 여자가 현장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흑인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영화에서 '동양의 유태인'쯤으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묘사는 음미해볼 만하다. 큰 사고를 당한 한국인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건강이 아니라 돈이다.


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