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미 FTA는 성장 촉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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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부터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FTA가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주장도 그 중 하나다. 양극화 해소를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내세우는 참여정부가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 뻔한 FTA를 추진하는 것은 모순이란 주장이 386정치세력,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세금을 올려도 종합소득세는 상위 소득 20%가 세금의 97%를 내기 때문에 나머지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식으로 한국사회를 '20%의 부유층'과 '80%의 서민층'으로 양분하는 시각에서 보면, 한ㆍ미 FTA는 상위 20%에게만 혜택을 집중적으로 몰아주고 나머지 80%는 고통을 주는 지극히 불공정한 거래로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시각은 사실인식부터 잘못됐다. 통계청 도시가계 조사에 의하면 상위 20%의 소득비중은 1985년 40%,99년 40.2%,2005년 39%로 보고되고 있다.
상위 20%의 부익부 현상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상위 20%가 아니라 하위 20%다. 참여정부 집권 3년동안 하위 20%의 소득비중은 7.44%, 7.18%, 7.17%로 지속적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분배를 중시하는 참여정부에서 하위 20%가 더욱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은 성장이 수반되지 않는 분배정책의 공허함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상위 20%를 문제삼는 양극화론은 다분히 정략적이란 느낌을 받게 한다. '상위 20% 대 하위 80%'의 눈으로 한ㆍ미 FTA를 보는 시각은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일단 시각교정을 한 다음 문제를 재설정하면 관건은 한ㆍ미 FTA가 한국사회의 빈곤계층, 즉 하위 20%의 삶을 더욱 더 고난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효과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피해집단이 개방과 경쟁의 격랑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한다면 FTA는 모두에게 복음이다.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천만에.미국이라는 거대시장과 연계하고 미국의 기술,자본을 한국 경제성장의 촉진제로 사용하는 FTA가 없다면 이들 하위 20%의 삶은 더욱 곤궁해질 따름이니까. 무엇이 더 무책임한 일인가? FTA는 경쟁과 개방이라는 외생적 충격을 통해 경제의 비생산적ㆍ비효율적인 부분을 구조조정하는 프로젝트다. 그간의 경험은 구조조정이 충격 그 자체만으론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FTA가 구조조정의 물꼬를 트게 할 수는 있지만, 피해산업의 조직적인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적인 혼란과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 목표와 수단이 혼동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만 초래할 우려가 높다.
한ㆍ칠레 FTA 비준과정, WTO 쌀협상 비준과정을 반추해보면 대의민주주의에서의 무역자유화와 국내정치를 연계하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사후 대응적인 정책이 되다보니 조를수록 뭔가 더 내놓는 정책이 되기 싶다.
피해보상 위주의 정책은 당장 유권자들의 표를 받아낼 수는 있겠지만, FTA 할 때마다 피해보상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생선을 주기 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짜는 법을 알려주라"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아쉽다.
피해산업의 구조조정보다는 피해집단 보상 위주의 정책으로 흐른 이유는 먼저 협정을 체결하고 국회 비준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집단과 협상을 한 데에도 있다.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국내적으로 피해산업의 구조조정 촉진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일의 순서이다. 기왕에 진행되고 있는 피해산업 관련 정책의 효과 분석이 있어야 한다.
2007년 한국 대선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FTA 비준이 정치적 인기영합주의의 경연장이 돼 누가 더 피해집단에 매력적인 보상책을 내놓느냐는 식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략적인 양극화 공세를 지양하고, 한ㆍ미 FTA를 한국민 전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드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