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싱가포르 시내 크로스 스트리트 8가에 있는 PWC빌딩 28층.DBS은행의 150여 프라이빗뱅커(PB)들이 전화 등을 통해 고객들을 응대하느라 분주하다. PB들은 5팀으로 나뉘어져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의 고객들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PB의 데스크 바로 옆에서는 멜라카,세부,수코타이 등의 명패가 붙여진 회의실이 있다.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 부자들을 타깃으로 영업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에스 에프 웡 DBS PB사업본부장(이사)은 "고객의 부를 창조해주는 특화 서비스를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선호받는 PB 은행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2 ] 홍콩 파이낸스 스트리트 8번가 국제금융센터빌딩 63층."1958년부터 마치 지역은행처럼 영업해왔다"(에릭 오빈 이사)는 BNP 파리바은행의 PB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 곳곳에 그들만의 노하우가 배어있는지 센터 입구의 로고 외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오빈 이사는 "홍콩 거부(Tycoon)들 재산의 40% 이상을 유치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BNP파리바는 요즘 거부 2세들 대상의 세미나를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말이 세미나지 사실상 네트워킹을 위한 모임이다. 오빈 이사는 "새로운 고객 유치도 좋지만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고객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고객수성'의 의지를 보였다. 아시아 PB시장을 놓고 싱가포르와 홍콩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특히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에 힘입어 아시아 지역의 부(富)가 크게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PB분야의 세계 강자인 UBS의 전망에 따르면 아시아지역 개인들이 보유한 유동자산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8.9%씩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평균 5.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게다가 요즘엔 EU(유럽연합) 및 스위스 등 유럽국가들이 개인의 금융거래와 관련한 규제(세금,정보공개 등)를 강화하고 있어 일부 유럽자금들마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스위스의 경우 그동안 글로벌 역외자산의 30%가 안식하는 곳이었지만 작년 7월부터 EU시민 계좌에 대해 보유세를 부과하는 탓에 일부 자금유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금을 유치하는 데에는 정부가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홍콩 입법회는 작년 11월2일 영구 거주인(내·외국인 불문)에 대해 상속세를 폐지했다. 이 법은 작년 7월15월부터 소급 적용된다. 앞서 홍콩 정부는 역외펀드가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는 법안도 입법회에 제출했다. 홍콩 금융감독청 은행감독국의 앨리스 리 팀장은 "행정 및 입법 당국의 조치는 더많은 외국자금을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자산관리산업의 발전을 도모하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 정부는 이민정책도 더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홍콩 내 부동산 또는 금융자산에 650만홍콩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에 대해선 이민신청 자격을 주는 제도를 작년 10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에 뒤질세라 싱가포르 정부는 적어도 미화로 1300만달러어치의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 싱가포르 소재 금융회사에 310만달러를 예치하는 외국인에 대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2004년 중 관련 법을 고쳤다. 지난해엔 외국에 있는 싱가포르 자금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이자소득세도 폐지했다. 에스 에프 웡 DBS PB사업본부장은 "싱가포르에서도 조만간 상속세를 폐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마치 싱가포르와 홍콩이 경쟁이라도 하듯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국가의 이 같은 노력은 상당한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금융감독청 자료에 따르면 PB 등을 비롯해 싱가포르 내 자산관리회사들이 관리하고 있는 펀드 규모는 1998년 말 미화 940억달러에서 2004년 말엔 3560억달러로 늘어났다. 작년엔 크레디 스위스가 국제PB본부를 취리히에서 싱가포르로 옮기기도 했다. UBS의 위르겐 히르시 전무는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홍콩은 스스로 '아시아의 자산관리센터'로 부르고 있다. 홍콩감독청 통계에 따르면 2003년에 홍콩소재 자산관리 금융회사들의 총자산은 미화 2조9500억달러로 이 가운데 63%인 1조8600억달러가 해외투자자 자금인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더 나아가 홍콩은 중국 진출의 관문(gateway)임을 자임하고 있다. 금융감독청의 앨리스 리 팀장은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중국에 섣불리 투자하지 못하는 기업인이나 투자자에게 홍콩은 적절한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 취재팀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김경윤 신한은행 부산PB센터 부지점장 손민보 신한은행 분당PB센터 팀장 이성태 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