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삼 < 연세대교수·경제학 >

요즈음 가장 두드러진 화두는 '양극화' 문제일 것이다.

경제에만 국한하더라도 다양한 현상이 양극화로 표현되고 있다.

수출산업과 내수산업,대기업과 중소기업,수도권과 지방,정규직과 비정규직,전문직 자영업과 영세 자영업 등과 같이 집단 간 경제실적의 차이가 그 예이다.

이러한 양극화에 대한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양극화가 생긴 이유를 살펴야 할 것이다.

박승 전 한은총재는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 경제가 급격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현상"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해법으로 "우리 경제의 모든 부문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구조조정을 보다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안에 따라 더 세밀한 조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는 올바른 진단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각 부문의 자발적인 노력과 경쟁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향이다.

그런데 청와대 홈페이지의 "비정한 사회,따뜻한 사회" 시리즈에서는 양극화를 주로 빈부격차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복지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청와대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국가를 이끌어가려면 많은 측면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산타클로스는 먼 나라 어디에선가 매년 선물더미를 준비하는 재주를 지녔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복지지출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하려면 재원조달 문제와 그것이 가져올 효과를 '비정하게? 따져보아야 옳다.

지속적인 복지 제공은 성장이 어느 정도는 유지돼야 가능한 일이다.

복지와 성장은 경제학의 큰 관심사이기에 많은 연구가 이뤄진 바 있다.

복지가 성장을 촉진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실증분석이 시도됐다.

그러나 두드러진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는 결과와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섞여 있다.

그나마 논란이 되지 않는 분석은 거의 없는 상태다.

'따뜻한' 정책에 꼬리를 다는 일은 인기가 없다.

그러나 대폭적인 복지예산의 증액은 신중해야 한다.

일단 제공된 복지는 줄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따뜻한 정책이라도 행여 오버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 재원을 필요로 하는 용처는 당연히 여러 곳이다.

빈부의 양극화 문제에 국한하더라도 우리는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시급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그것이다.

현재의 양극화 논의가 동일 세대간의 문제라면 국민 연금은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양극화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국민연금은 불과 2040년 중반이면 재정이 완전 바닥난다. 지금도 하루 800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잠재부채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지난 연말의 연금 적립액은 173조원인데 지급해야 할 돈은 459조원에 이른다. 현재 시점에서의 잠재부채가 286조원인 셈이다. 국가부채가 작년 말 248조원이라고 하니 그 규모의 어마어마함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 필연인 상태다.

그런데다 적자의 대부분은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하는 어불성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의 표현대로 우리가 후손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연금의 개혁 문제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식있는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야 할 일이다.

근래에 나온 얘기 중 두드러지게 현실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권은 과거와 달리 이 일을 사심없이 논의하고 냉철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복지예산 논의에도 이 문제가 진지하게 함께 고려되기를 희망한다. 부모가 배를 곯을지언정 어떻게 자식의 밥그릇을 앗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