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영 <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 >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자기 방어에 골몰하며 살아왔다.

밀고 들어오는 외부의 힘은 항상 거셌다.

그 중 몇 번은 우리나라에 살던 사람들을 흡수해 버릴 것 같은 위기까지 있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늘 어려웠다.

자신들이 흡수되고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

밀고 들어온 바깥사람들이 '우리'와 섞이고 마침내는 우리를 흐트러뜨려,온전히 빨아먹게 되리라는 위기감 말이다.

고려 후기 몽골 지배기간이 그랬다.

고려 왕가는 의무적으로 몽골인과의 혼혈 왕자를 통해 계승됐고,나라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이 몽골 것을 채택하는 이른바 '식민문화통치'가 진행됐다.

일반인의 수준에서도 그렇다.

한반도 주민들 다수는 몽골 민족의 후예만이 가진다는 '몽고반점'을 지니고 태어난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조선시대도 만만치 않았다.

북쪽 국경과 남쪽 바다를 여진인과 일본인들이 넘나들었다.

실은 조선의 건국 때부터 여진인들 일부가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왕족이 됐다.

한편 중국 유교문화에 심취한 일부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소(小) 중화'라고 여겼다.

중국인들보다도 더 열심히 중국문화의 일부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아, 소 중화인답게 살고자 했다.

웬만한 양반들은 중국의 성씨를 들여와 자신들의 성씨로 채택했다.

또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것은 고려 때부터 이어져온 자발적인 "창씨개명"이다.

조선시대는 족보의 확산과 함께 혈통 개념이 일반인들의 인식에 깊게 뿌리내린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지배계급의 한정된 자원 독점을 위해 피의 계통을 세분화시켜 많은 차별양식을 만들어냈다.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주인공 홍길동의 가슴에 맺힌 가장 큰 한은 양반과 상민의 일반적 계급구조가 아니라 "자식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서얼에 대한 태생적 차별이었다.

홍길동의 허물은 양반과 상민 사이의 '혼혈인'으로 태어난 죄였다.

가장 최근의 위기로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가 있다.

이 때는 일본 출신인과 한반도 출신인 사이의 결혼을 통한 세대계승이 확산되기 어려울 만큼 일본인들이 한반도인들에 대해 배타적이었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인들을 포용하지 않는 동시에 한반도를 영토 통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오히려 '혼혈'을 방지한 것일까? 근대 일본도 단일민족의 신화를 채택하고 싶어했다.

이 때 한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민족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단군의 자손,단일 민족의 신화는 이 때만큼 중요한 적이 없었다.

'내선 일체'와 '대동아 공영권'에 대항하기 위한 안간힘이 싹텄다.

백범 김구는 그래서 당시 종족 구분 없이 모두 하나로 살자는 '사해동포주의'를 거부하고 '오로지 민족주의'로 살 길을 찾자고 했다.

그렇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차별'만은 하지 말아야 했다.

다름과 다양성에 대한 거부는 결국 단일성 찬양의 획일주의와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피'가 독일 아리아 인종의 혈통을 '오염'시키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치 정권은 수백만명을 대량 학살하는 자신들을 정당화했다.

남아공화국에서는 최근까지도 '유색 인종'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타거나 공공건물에 같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는 다른 종족 출신 사람과 결혼하는 것,또 거기서 태어난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사회가 멸시하고 수군거리는 것이 최근까지의 대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결혼을 주선한다는 현수막 광고까지 내걸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한반도 사람들이 전 세계의 주민으로 흩어지고 섞이며 살아간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동하고 또 섞이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새로운 '우리'의 틀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