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빠진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회사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다.

"(현대차 판매본부 A대의원) "(야유와 함께) 노조 대의원이라면 조합원 임금과 복지 향상에나 신경써라."(다른 대의원들) 지난 1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노조의 임시대의원대회.현대차 노조 대의원들은 "환율 급락 등 최악의 경영환경과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겹치면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회사 입장도 고려하자"는 한 대의원의 발언에 야유부터 보냈다.

노조는 대신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2006년 임금협상 요구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잇달은 악재로 신음하고 있는 회사측은 임금 동결을 요구할 계획이어서 올해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로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설상가상의 난제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월급제·호봉제 실시하자"

현대차 노조는 '월급제와 호봉제를 실시하자'는 내용을 올해 처음 임협 별도 요구안으로 확정했다. 시행시기는 호봉제가 2006년 상반기,월급제는 2007년 1월로 못박았다.

노조가 임금 체계를 바꾸자고 요구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실제 근무한 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는 현행 시급제와 달리 매달 고정급을 받는 월급제가 시행되면 노동강도가 완화된다는 게 첫번째 이유다.

또 호봉제가 시행되면 임금협상을 하지 않아도 근무 연수에 따라 매년 상당 수준의 임금인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노조는 특히 올해는 조합원의 사기앙양을 위해 정기 승급분과는 별도의 특별 호봉 승급을 적용할 것을 요구키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현재 현대차 생산직 직원들은 2시간가량의 잔업을 포함해 10시간씩 주야 2교대로 일하고 있다"며 "호봉제와 월급제가 시행되면 근무시간이 줄어들어도 현재의 임금수준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구체적인 근무형태는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지지만 어떤 형태가 되든 회사측엔 큰 부담이 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기본급 9.1% 인상

노조는 올해 임금 인상률을 기본급 대비 9.1%(통상급 대비 7.45%)로 확정했다. 금액으로는 12만5524원. 이는 경영여건이 좋았던 지난해 요구안(8.48%)보다도 높은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의 생활 실태를 조사해 평균임금 요구액을 산출하고 회사의 지불능력과 올해 물가상승률 등 주변 경제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특히 협상경과를 지켜보며 △직무·직책 수당 인상 △작년 당기순이익 30% 수준의 성과급 지급 △현대차 무상주 부여 등도 요구키로 해 실제 임금 인상 요구 수준은 10%를 훌쩍 넘어선다.

노조는 이 밖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회사측을 겨냥해 △노조 추천 사외이사제와 최고경영감독기구 구성 △글로비스 엠코 등 중간착취 회사 해체 △해외공장 증설 중단과 국내투자를 통한 고용증가 등 경영권을 침해하는 요구안도 대거 내놓았다.

◆현대차 "해도 너무 한다"

현대차는 이 같은 노조의 요구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대차는 "환율은 외환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유가는 사상 최고치인 1배럴당 68달러에 이른 상황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는 회사의 경쟁력 약화를 가중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을 올려줄 경우 장기적 고용안정도 보장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실제 현대차는 환율이 작년 말 1010원대에서 950원으로 추락한 만큼 매출과 영업이익에 각각 6000억원과 3500억원 감소 요인이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선포한 '비상경영'은 엄살이 아닌 실제 상황이란 것이다.

문제는 검찰 수사로 인한 '경영 공백'으로 인해 회사측의 협상력이 떨어졌다는 것.특히 노조와 협상에 나서야 할 주요 경영진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은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는데 노조가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며 "노조가 회사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파업이란 극한 수단을 사용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오상헌·울산=하인식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