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핵문제가 심상치 않다.

북·미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데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개최마저 불투명하다.

어렵사리 마련된 6자회담 수석대표의 도쿄 회동에서도 북·미 간 의미 있는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법행위엔 협상이 없고 회담 복귀엔 대가가 없다는 미국의 원칙적 입장과 대북 금융제재가 해제돼야만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 북한의 완고한 고집 사이에 아직 타협의 기미는 없다.

최근의 국면은 핵문제 말고도 이른바 '북한문제'를 놓고 북·미 간 구조적 대결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은 북핵문제 이외에 위폐 인권 마약 등 다양한 북한 이슈들을 통해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목표인 '민주확산'과 '폭정종식'에 따라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핵을 넘어 이제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및 불법행위 차단 등 본격적인 대북 압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 의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가 동시 병행적으로 진행되면서 북·미 간 갈등은 보다 악화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응해 일단 6자회담을 카드로 삼아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난 1월 베이징에서의 김계관-힐 회동으로도,지난 3월 리근 국장의 방미로도 미국의 입장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연초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을 통해 미국과의 정치적 타협을 원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도 '북핵 따로, 북한문제 따로'라는 미국의 입장을 바꾸지는 못했다.

당면 쟁점인 위폐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일정한 양보 의사를 보이면서 체면치레용(face-saving) 접점 찾기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 같은 절충 시도 역시 미국의 단호한 입장에 의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최근에 조성된 미묘한 정세 변화의 핵심에는 바로 이 같은 북·미 양자의 입장 차이가 놓여 있다.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용 압박 전면화와 이에 맞서는 북한의 대미 대결용 '3년 버티기'가 맞부딪칠 경우 한반도에서는 9·19 이후 오히려 더 심각한 구조적 대결 국면을 맞게 되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국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북핵문제가 장기 정체되고 북·미 간 대결이 구조화되는 지금의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북한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이 지속될 것임이 분명한 상황에서 미국더러 북한의 체제전환 시도를 포기하라고 한국이 설득하기는 해야 하지만 여전히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문제해결을 위한 더 빠른 길은 북한에 먼저 미국에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길일 것이다.

미국의 입장이 단호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문제 등에 분명한 성의를 보이거나 미국의 체제전환용 압박을 무력화시킬 만한 전면적인 개혁개방 의지 표명 등을 실지 행동으로 보이는 길이 오히려 미국의 대북 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도임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이것이 결과적으로 북한에도 유리한 것임을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6자회담 개최 자체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지금은 북한의 선회담 복귀 선언이 상황호전의 필요조건임을 북한에 명확히 설명해줘야 한다.

대미 대결의 장기화를 겨냥해 남북관계의 유지가 필요한 북한에 우리의 요구는 나름대로 힘을 가질 수 있다.

봄철 비료를 얻기 위한 북한의 절실함은 결국 한·미연합 훈련으로 연기시켰던 남북 장관급 회담의 개최 날짜를 확정하게 했다.

아직은 북한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만한 남측의 역량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의 무모한 '3년 버티기' 대신 미국의 변화를 유도할 만한 북한의 선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국 정부는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