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큰별 신상옥 감독이 11일 밤 타계했다.

향년 80세.

2년 전 간이식수술을 받은 고인은 최근 건강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투병생활을 해왔다.

전후 혼란기에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를 발표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온 고인은 톱배우였던 아내 최은희씨와 납북·탈북 과정을 거치며 마치 영화의 주인공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1926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45년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미술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52년 양공주들의 삶을 주제로 추악한 현실을 고발한 '악야(惡夜)'로 첫 메가폰을 잡았고 이듬해 당시 톱스타였던 최은희씨와 결혼하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고인은 60년대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우리 민족의 감성과 역사가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들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사업가적인 자질도 갖췄다.

1966년 당시 한국 최대의 영화사인 신필름을 세워 70년까지 운영하며 구멍가게 수준의 영화제작사를 기업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78년엔 부인 최은희씨가 납북된 데 이어 고인 역시 6개월 후 납북됐으며,8년의 납북 기간에 만든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7편의 영화는 한국 영화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중 고려시대 민담에 기초한 '불가사리'는 2000년 7월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북한영화 1호로 기록됐다.

86년 북한 탈출에 성공한 고인은 미국에 머물면서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영화관련 활동을 해오다가 2000년에 영구 귀국했다.

정부는 12일 고 신상옥 감독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키로 하고 이날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신 감독의 빈소를 방문해 훈장을 전달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남편을 잃은 충격에 말문을 열지 못하던 부인 최씨는 "남편은 담배도 술도 못하고 오락이라는 것은 없는 분이었다"면서 "이제 여행도 다니며 여생을 즐기자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떠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고인의 제자인 변장호 감독을 비롯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곽정환 서울시극장협회 명예회장,정인엽·정진우 감독,영화배우 신영균ㆍ남궁원ㆍ윤일봉ㆍ최지희 등 영화인들과 평소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성우 오승룡 씨,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연극연출가 임영웅 씨,드라마 작가 신봉승씨 등도 빈소를 찾았다.

특히 신필름 전속배우였다는 남궁원씨는 "감독님에게는 가정보다는 영화가 먼저였다"면서 "영화를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씨와 정균(영화감독)ㆍ상균(미국 거주)ㆍ명희ㆍ승리 등 2남2녀,영결식은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5일 오전,장지는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